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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숲속의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신고 회원메모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movieli.st 작성일21.03.27 06:54 5,43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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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역꾸역 사는 ‘화난 아저씨’ 세상을 사랑하게 되다

등록 :2021-03-26 17:26수정 :2021-03-27 02:32

 

영드 ‘애프터 라이프 앵그리맨’
 

 

 

리키 저베이스. 우리에게는 ‘골든 글로브’ 시상식 진행자로 세계적인 할리우드 배우들을 가루가 되도록 까는 모습으로 유명한 영국 코미디언이다. 골든 글로브의 또 다른 재미는 올해는 어떤 스타가 저베이스의 제물이 될까 하는 것이다. 매해 연말 연예 대상에서 어록을 남기는 김구라 같다고 하면 적당할 것 같다. 원래 저베이스는 스탠딩 코미디의 대가다. 유튜브에 한글 자막이 있는 영상도 많으니 한번 보기를 추천한다. 이 독한 리키 저베이스가 직접 제작하고 감독하고 주연까지 했는데 심지어 제목이 ‘화난 아저씨’다. 2019년 시즌1, 2020년 시즌2를 선보인 넷플릭스 영국 드라마 <애프터 라이프 앵그리맨>이다.

 

 

25년의 행복한 결혼생활. 사랑하는 아내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혼자 남은 신문기자 토니는 더는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 키우는 개가 통조림만 딸 수 있었으면 바로 죽었을 것 같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인생. 그냥 막살기로 마음먹고 나니 무슨 짓을 해도 되는 초능력을 가진 것 같다. 거리의 불량배가 길을 막으면 망설임 없이 그냥 때려버린다. 어차피 착하고 사려 깊게 배려해봤자 결국 혼자 남지 않았나.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신경질을 부린다. 촌철살인과 팩트 폭행을 퍼붓는 토니의 말을 듣다 보면 인생이 의미 없어 보이고 나 자신이 초라해진다. 과연 질풍노도의 중2병 같은 아저씨는 다시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토니의 삶은 극단적으로 단조롭다. 세상에서 가장 바쁜 일이 없어 보이는 동네 신문사, 치매 아버지가 있는 요양원, 아내의 무덤이 있는 묘지, 정신과 상담실, 개와의 산책. 그의 하루는 이렇게 한 바퀴 돌면 끝난다.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미덕은 반복되는 일상을 통해 사소한 것들이 가치 있다는 진리를 유쾌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토니는 독자들의 제보를 취재한다. 코로 리코더를 불 수 있다거나, 물이 샌 벽지가 추기경을 닮았다든가, 모유가 남아서 푸딩을 만들었다는 시민들을 취재하는 토니의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정화된다. 그리고 그의 무미건조한 일상에 우체부, 성 노동자, 간병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불쑥불쑥 끼어든다. ‘저 사람은 뭐지?’ 했던 사람들이 새로운 장소에서 반복해서 등장할 때마다 더 큰 소리로 웃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일상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결국 토니를 정상적인 삶으로 이끄는 선생이 된다. 아내의 묘지에서 만난 미망인은 토니에게 말한다. “노인들은 알고 있죠. 자신이 나무를 심는다고 해도 그 나무 그늘에서 쉴 수 없다는 걸. 그런데도 노인들이 나무를 심을 때 사회는 크게 자란답니다. 좋은 사람은 남을 위해 사니까요. 토니는 좋은 사람이에요.”

 

드라마에는 꾸역꾸역 사는 토니의 일상과 함께 아내가 죽기 전에 남긴 영상 편지, 그리고 아내와의 추억 영상이 끊임없이 교차한다. “당신은 정말 좋은 사람이고, 내가 떠나도 행복하게 살길 바란다”는 아내의 마지막 메시지를 보며 눈물짓는 토니를 보노라면 이미 시청자는 토니가 언젠가는 세상을 사랑하게 될 것이란 걸 알게 된다. 우리는 모두 기억으로 이루어진 존재다. 연인, 가족, 친구가 소중한 이유는 그들에게는 다른 사람은 모르는 나에 대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예능 프로그램을 만든다. 방송 프로그램이란 게 어느 순간 온 나라가 떠들썩하게 열광하다가도 곧바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법이다. 허무할 때도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뜨거웠던 날을 기억하고 있는 동료들과 옛 추억을 나누며 소주잔을 기울이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아내와의 추억에 갇혀 있던 까칠한 아저씨가 치유되는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착한 사람에게도 불행이 닥치고 악한 사람에게도 행운이 온다. 그러므로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비극을 표현할 줄 아는 코미디를 사랑한다. 가난이나 이별도 때로는 코미디가 될 수 있다. 심지어 이 드라마는 우울증도 코미디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방탄소년단의 ‘라이프 고즈 온’의 가사처럼 어느 날 세상이 멈추고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해도, 우리의 유쾌한 삶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박상혁 씨제이이엔엠 예능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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