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發 역사 왜곡 우려 

게재 일자 : 2021년 03월 10일(水) 

김인구 문화부 차장

사이버 외교 사절단인 반크가 지난 6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체인 넷플릭스에 전범국 일본의 역사를 제대로 알리라고 요구했다. 넷플릭스에서 방영되는 일본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에서 주인공이 제국주의 욱일기를 연상시키는 귀걸이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귀멸의 칼날’ 극장판이 국내 개봉할 때도 똑같이 문제로 지적됐다. 이에 수입사는 극장판에서 귀걸이 문양을 수정했다. 넷플릭스도 국내 방영판에서는 문양을 바꿨다. 그러나 호주 버전은 그대로 둔 것으로 전해지면서 이를 발견한 네티즌들의 지적이 빗발쳤다. 그 사이 욱일기 문양은 넷플릭스의 월드와이드 네트워크를 타고 여과 없이 호주 전역으로 전달됐다.

넷플릭스의 어린이용 미국 드라마 시리즈 ‘베이비시터 클럽’도 잡음을 낳았다. 10대 소녀들의 고민을 담은 이 드라마엔 일본계 미국인 소녀 클로디아 기시 가족이 나온다. 6화에서 기시의 할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가족들이 걱정하는 가운데 클로디아의 언니가 할머니에 관한 아픈 기억을 동생에게 설명해준다. “2차 세계대전 동안 일본계 미국 시민들을 미국은 ‘적국인’으로 분류했어. 정부는 그들의 집을 뺏고, 포로수용소에 넣었지. 일본인이라는 이유로”라는 대사다. 반크는 이 내용이 아이들에게 마치 일본이 전쟁의 피해국인 것처럼 오해될 소지가 있다고 봤다.

심지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사무라이의 시대’는 그냥 넘기기엔 매우 심각한 수준의 역사 왜곡이 우려된다. 이 작품은 오다 노부나가부터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거쳐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이어지는 일본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당시 다이묘들의 전사로 등장했던 사무라이의 기원과 활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문제는 5화에 등장하는 조선 시대의 표현과 임진왜란에 대한 사실관계다. 익선관 대신 갓을 쓴 조선의 왕은 한눈에 봐도 그 차림이 허접하다. 일본의 침략에 맞선 의병장으로 등장하는 곽재우도 ‘홍의 장군’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로 “처녀들의 월경혈로 물들인 홍의를 입어서 적들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받는다는 이야기가 돌았다”고 설명하는데 황당하다. 픽션이 아닌, 다큐멘터리에서 이런 설명이 나오는 게 문제다. 더구나 역사적 근거를 위해 수많은 사학자와 저술가가 화자로 출연하는데 이런 설명이 붙어 어처구니가 없다. 임진왜란의 영웅인 이순신 장군에 대한 설명은 아예 없다.

넷플릭스는 지난달 말 이례적으로 올해의 콘텐츠 라인업을 소개하는 행사를 열고 “올해 5억 달러(약 5500억 원)를 한국 콘텐츠 제작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4일에는 미국 USC 연구팀과 함께 다양성 리포트를 발간하기도 했다. 젠더, 인종, 민족성, 성 소수자 등 넷플릭스를 통해 선보인 콘텐츠 제작진과 출연진의 다양성이 매년 개선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이미 공룡이 된 넷플릭스의 자체 의지만으로 이 모든 콘텐츠를 모니터링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교수의 위안부 관련 논문이 최근 역사 왜곡으로 큰 비판을 받았다.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면 그냥 받아들여질 뻔한 일이었다. 콘텐츠 검열은 안 될 말이지만 이처럼 역사를 가벼이 여기는 자세는 용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