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할머니'로 소문난 하숙집 주인의 반전 이력
[다큐멘터리에 들어서면] 넷플릭스 <악몽의 룸메이트(Worst Roommate Ever)>
넷플릭스 <악몽의 룸메이트>는 '반전의' 룸메이트 사연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경제적 손실이나 정신적 고통을 크게 야기하는 룸메이트, 공포 조장 및 살해 위협을 일삼는 룸메이트, 나아가 실제로 살인을 1건 이상 저지른 못된 룸메이트들의 이야기를 모았다.
영화를 보다 보면, 피해자들에게서 치명적인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그들이 룸메이트 후보자를 인터뷰할 때 일종의 선입견에 의거해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는 점이다. 친절하고 상냥한 할머니라서 마음이 놓인다(1화), 조용하고 얌전한 사람이니 문제를 안 일으키겠다(2화), 잘생기고 붙임성 있는 사람이니 재미있게 잘 지낼 수 있겠다(3화), 법관을 목표로 할 정도로 수재인 데다 반려동물까지 잘 돌보니 섬세한 사람이겠네(4-5화) 등등.
그러나 룸메이트에게 당한 피해자들이 '특이한' 선입견(유난스러운 편견)의 소유자는 아니다. 바로 그 지점에 영화의 미덕이 있다. 즉 출연자들의 선입견과 나의 선입견을 견주어보며 생각할 기회를 시청자들에게 제공하기 때문이다.
하숙집 중년 여성의 반전 이력
에피소드1에서는 실제 나이보다 더 늙은 나이로 자신을 소개하며 상대의 경계심을 풀도록 유도했던 중년여성 도로시아(D)의 사례가 나온다. 하숙집을 운영했던 D는 지역사회에 '착한 할머니'로 소문이 자자했다. 상냥한 D가 오갈 데 없는 회적 약자들의 사회보장연금을 갈취하고, 갈취한 돈으로 온갖 곳에 거액의 기부금을 투척할 사람이라고는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웠다.
D의 악행은 심각했으며, 마침내 발각됐다. 발단은 D의 하숙집에서 지내던 한 사람이 갑자기 온데간데없이 실종되면서 시작됐다. 실종사건이 발발하자 하숙집 룸메이트 중 한 사람의 제보로 형사들이 하숙집을 수색할 수 있었는데, 시신이 하숙집 마당에서 발굴됐다. 급기야 그 마당에서 실종자를 포함해 시신이 무려 7구나 나왔다.
▲ 영화 스틸컷 도러시아 (할머니) ⓒ 넷플릭스
"할머니처러 생각하라"라며 상냥한 말로 사람들을 안심시키곤 했던 하숙집 할머니 D는 위조수표 제작, 의료인 사칭, 독살, 절도, 성매매 알선 등의 범죄전력을 지닌 여성이었다. 물론 전과자니까 경계해야 한다는 선입견도 부당하며 옳지 않다. 동시에 반대쪽 차원에서 동일한 판단 패턴을 전개해볼 수 있다. 즉 상냥한 어조와 푸근한 외모는 경계할 필요가 없다는 선입견도 위험하다는 것 말이다.
에피소드2는 K.C. 조이라는 조용하고 얌전한 남성이, 전역 군인 마리벨의 룸메이트로 들어가서 그녀를 짝사랑하다가, 그녀에 대한 집착이 심해졌고 결국 그녀를 살해했다는 이야기가 담겼다. 마리벨은 K.C.를 룸메이트로 들인 장본인인데, 씩씩하고 쾌활한 마리벨은 조용하고 얌전한 그를 자신의 가족에게도 소개하고, 심지어 가족모임에도 끼워주는 등 살뜰히 보살펴주었다.
그러자 K.C.는 착각하기 시작했다. 그녀와 결혼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가 조용하고 얌전했던 것은 성품이 부드러워서가 아니라, 사회성이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어느 날 불쑥 마리벨의 여동생에게 연락해 "내가 마리벨의 남편이 될 수 있다"라는 말을 내뱉어 여동생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는 마리벨과 어울리기 위해 성형수술까지 감행했다.
그제서야 부담스러워진 마리벨은 K.C.를 집에서 내보내려 했고, 둘 사이에 혹시 폭력이 일어나면 자기가 K.C.를 때릴지도 모른다며 (경찰에) 미리 신고하기도 했다. 마리벨은 군복무 경력자이기 때문에 어지간한 남성은 능히 상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이 꼬였고, 마침내 마리벨이 K.C.에게 살해되고 말았다. K.C.는 평소엔 조용하고 얌전하게 행동했지만, 화를 낼 때는 몹시 격렬한 사람이었다. 그 때문에 자기 가족들과도 연을 끊고 사는 사람이었다. 조용하고 얌전하면 '문제를 안 일으킨다'라는 일종의 선입견에서 시작된 사건으로, 누군가를 판단할 때 그 사람의 가족배경과 주위환경을 객관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에피소드3에서는 화려한 거짓말로 소수민족 공동체의 후원금을 갈취하고, 친구와 룸메이트들에게 꾼 돈을 갚기는커녕 그들을 죽여 없애려 했던 유세프(Y)라는 잘생긴 청년이 등장한다. 울트라마라톤선수로 활동하는 핸섬한 Y에게 속아 그에게 돈을 빌려주거나 그냥 맡기거나 후원금을 모금해줬던 사람이 무려 65명에 달한다.
▲ 영화 스틸컷 유세프 ⓒ 넷플릭스
잘생긴 얼굴에 말도 잘 하고 운동도 잘 하는 남자는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매력적이다. 자기가 매력적인 사람이란 걸 자각하고 자신의 매력을 범죄에 활용하고자 마음 먹으면, 기회를 잡기도 쉽다.
그러나 뛰어난 외모와 언변, 신체적 능력의 사람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선입견에 대해서 의심해보고 살펴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Y 주변에도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 Y를 신고하는 사람들이 제법 여럿 되었다. 그 덕분에 Y는 여러 번 체포됐고 그 결과 여러 번 감옥에 들어갔다.
집주인 괴롭히는 세입자
다음으로 다큐멘터리의 에피소드4-5는 제이미슨(J) 한 사람의 범죄행각에 관한 이야기다. J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훤칠한 키, 똑똑한 말씨의 소유자였으며, 법을 공부한 수재였다. 졸업 이후 법관이 되진 못했으나, 한때 학교 선생으로 일할 정도로 실력이 있었다(물론 금세 해고됐지만).
J는 특히 임대차법을 완전히 꿰뚫고 있었다. 미국 임대차법에 따르면, 집에 들어온 세입자가 그 주소로 공식적 우편물을 받기 시작하면 집주인은 그 세입자를 쫓아내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J는 바로 그 법을 활용, 아니 악용해서 여러 룸메이트를 괴롭혔다. 일단 룸메이트로 선정돼 어떤 주거지에 들어가게 되면 그는 그곳을 우편물 받는 주소로 등록하고, 그 다음부터 룸메이트(기존 세입자)를 집요하게 괴롭히기 시작한다.
상습 불법 거주자로서 J의 룸메이트 괴롭힘 방식은 다음과 같았다. 룸메이트의 물건들을 제맘대로 옮기고, 성별이 다른 룸메이트의 방에 제맘대로 들락거리며, 룸메이트가 자신을 해코지했다는 등의 없는 사실을 꾸며내 고소하고 법원의 접근금지명령을 받아낸다. 월세를 제때 납부하지 않는 것은 기본이고 그걸 문제삼을 경우 룸메이트를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팬다. 견디다 못해 룸메이트가 집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고 집을 나가면, 자기가 그 집을 차지하고는 다음 타자로 집주인을 겨냥한다.
J는 폭행치사, 살인미수 건으로 몇 차례 수감되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형이 보석금을 납부하고 그를 빼내주었다. 시일이 흐르며 J의 본색을 알게 된 사람들은 어떻게든 그를 집에서 쫓아내려 노력했으며, 필요한 경우 유치장에 집어넣었지만, 그의 형은 그를 끝까지 돌봐주었다. 그렇지만 J는 (누가 봐도 잘 도와주는) 형이 자기를 잘 도와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다가, 급기야 형을 살해했다. 그 때문에 1급살인범으로 체포되었는데, J는 결국 자살해 버렸다.
J를 룸메이트로 들인 사람 중 한 명으로, 훗날 J가 칼을 휘둘러 죽을 뻔한 위기를 넘겼던 한 여성은 J가 키우던 개와 자기가 키우던 개가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며 J를 룸메이트로 확정했다고 회상했다. 반려동물을 학대하지 않고 잘 돌보는 사람들은 믿을 만하다는 생각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런 생각을 선입견이라 부른다면 선입견의 범위는 꽤 광범위하다(고백컨대, 나도 그런 선입견을 갖고 있는 편이다).
그러면 충분히 조심하고 선입견을 배제하고 신중하게 결정 내리면 우리는 못된 룸메이트 범죄자들을 사전에 잘 걸러낼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작정하고 해치려는 사람이 있을 때 그 사람을 걸러내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 영화 포스터 악몽의 룸메이트 ⓒ 넷플릭스
못된 룸메이트가 일으킨 참혹한 사건사고들을 다룬 <악몽의 룸메이트>를 보면서 사실 나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하게 됐다.
한 명의 나쁜 룸메이트의 위협은 선량한 다른 룸메이트(가족, 친구, 혹은 이웃)들의 도움으로 헤쳐나갈 수 있다는 것, 못된 룸메이트 문제는 혼자 해결하기 보다 선한 이웃의 도움을 받을 때 더 해결하기 쉽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