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24일(현지시간) 군사작전 개시를 승인하며 우크라이나 침공은 시작됐다. 유럽연합(EU)과 러시아 사이, 동과 서 한가운데 놓인 동유럽 민족의 비극적 운명에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중이다.
역사적 사건이 터지면 누군가는 관련 다큐멘터리를 찾는다.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를 두고 <윈터 온 파이어: 우크라이나의 자유 투쟁>을 언급하는 이들이 많다. 2015년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로,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다큐 부문 대상인 '피플스 초이스'상을 수상하고 아카데미상 장편다큐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던 수작이다.
다큐는 2013년 말부터 2014년 초까지 이어졌던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유로마이단 혁명' 과정을 담고 있다. 여기서 ‘마이단’은 ‘광장’이란 뜻이다. 겉으론 국민들이 열망하던 유럽연합 가입을 추진하고 뒤로는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내려했던 부패 정권 야누코비치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 그가 유럽연합과의 협력협정 체결을 중단하고 러시아를 택하자 반발하는 목소리가 생겨난다. 학생과 젊은이들은 SNS에서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수도 키이우 독립광장에 모이기 시작한다.
평화 시위는 오래가지 못했다. 차츰 정권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언뜻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국가 공권력에 의한 폭력이 자행되고 첫 사망자가 발생했다. 학생들이 주축이던 비무장 시위는 시민, 야권 정치인, 성직자 등 20~30만명 인파가 운집한 정권 퇴진 운동으로 확대된다.
카메라는 이브게니 아피네예브스키 감독의 시선을 따라 총알이 빗발치는 혁명의 거리 곳곳을 세밀히 포착한다. 역시 넷플릭스여서 가능한 연출이었을까. 그 묘사는 무척 잔인하고 직접적이었다. 영상에는 차마 눈 뜨고는 못 볼 장면들이 등장한다. 누군가 쏜 총에 맞아 쓰러지는 시민들. 쇠 곤봉에 맞아 피를 흘리고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면서도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퇴진을 소리높여 외치는 시민들. 카메라는 그들의 얼굴을 아주 가까이서 비춘다.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우크라이나 경찰 특공대 베르쿠트가 자행했던 폭력 진압 과정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시위대 중에는 정부 측이 심어놓은 가면 쓴 선동꾼들도 일부 섞여있었다. 진압 명분을 쌓기 위한 목적이었다. 어딘가에서 총을 쏘면, 정부 측과 시위대 양쪽에서 반격에 나선다. 충돌과 소강 상태가 반복되는 과정에서 안타까운 희생자는 계속 불어난다.
125명 사망·65명 실종이라는 시민들의 치열한 투쟁과 많은 희생 끝에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최후를 맞는 순간이 다큐 '윈터 온 파이어'의 가장 통쾌했던 장면이다. 다큐는 93일간 이어져 온 시민 승리의 서사를 아주 강렬한 이미지와 스토리텔링으로 그려낸다. 부패한 정부가 나라를 어디까지 망가뜨릴 수 있는 지 강조한다. 아무리 강한 권력이어도 단결된 시민의 힘은 절대 무너뜨리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다만 다큐영화의 감동은 딱 거기까지. 영화 속에서 빠져나온 뒤 현실은 지금 우리가 지켜보는 그대로다. 혁명 이후 우크라이나는 정치적 갈등이 잦아들기는커녕 친 러시아파와 친 서방파와의 대립이 끊이질 않았다. 러시아의 크림 반도 점령과 돈바스 내전이 발발하며 긴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정치권에 대한 극도의 환멸로 코미디언 출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를 지난 2019년 70%가 넘는 압도적 득표로 대통령에 당선시켰다. 그리고 지금, 우크라이나는 '22년 장기 독재'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복욕에 또다시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있다.
"납득할 수가 없어요. 전 세계에서 온갖 전쟁을 겪은 후에도 문제 해결의 수단으로 여전히 서로를 죽이고 있다는 걸요." 다큐 마지막에 나오는 한 우크라이나 시민의 말이 계속 생각난다.
◆시식평 : 잔인하다고요? 그게 진실입니다(이브게니 감독)
제목 : 윈터 온 파이어(Winter on Fire)
장르 : 다큐멘터리
국가 : 우크라이나, 미국, 영국
시간 : 102분
감독 : 이브게니 아피네예브스키
볼 수 있는 곳 : 넷플릭스
출처 : https://www.sedaily.com/NewsView/263AS200M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