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종교적인 기독교 해석 드러난 연상호 감독의 <지옥>
박욱주 칼럼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넷플릭스 영화 <지옥> (2)
변덕스럽고 원칙 없이 사람 죽이는 <지옥> 속 초월자
이해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는 이상한 존재 인식케 해
하나님 사랑과 계시, 구원 사역… 모든 믿음 헛것 여겨
사이비 종교와 기독교 본질적 차이 보지 않고 일방적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지옥>.
◈대상화된 신: 인간의 상상으로 신을 그려내고 설명하기
<지옥>이 그려내는 신, 혹은 초월자는 변덕스러운데다 원칙이 없다. 마치 자연재해처럼 사람을 특정해 지옥으로 보낼 예고를 하고, 예고한 시간이 되면 무자비한 폭력과 함께 사람을 태워 죽인다.
그리고 작품 속에서 이를 표현하는 CG는 촌스럽다 못해 우스꽝스럽기까지 한데, 이는 초월자로부터 신비감을 제거하려는 연상호 감독의 의중을 반영하는 듯하다.
신이나 초월자를 설명하거나 표현하려는 인간의 모든 노력은 대상화라는 난관에 부딪친다. 인간의 부족한 감각능력이나 지성으로는 초월자를 있는 그대로 표상하기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온갖 비유와 상징들을 총동원해 신성을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소개하려는 고달픈 노력이 수반되기 마련이다.
신을 진정으로 경배하고 숭앙하는 마음으로 대상화하는 경우, 그나마 인간이 제시하는 표상이나 상징을 가지고는 진정한 신의 모습에 전혀 다다르지 못하며, 오로지 그 편린이나 그림자만을 보여줄 뿐이라는 겸손의 심령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이는 모든 고등종교에서 공통적으로 목격되는 특징이다.
오늘날 대중문화 콘텐츠 가운데서도 간혹 신을 표현하려는 작품들이 있고, 그 가운데서도 신의 신비로움과 절대적 초월성을 존중하면서 대상화를 수행하는 것들이 있다.
근래 개봉된 작품으로는 <오두막>(The Shack, 2017)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사실 이 영화 속 삼위일체에 대한 표현방식은 몰몬교의 삼위삼체론을 연상시킨다는 문제점이 있다.
인간의 상상력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표현하다 보니 발생한 문제인데, 대신 작품 전체에서 일관되게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의 성품을 강조함으로써 이런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하고 있다.
하나님을 대상화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느낄 수 있게 표현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반면 <지옥>은 신비의 영역에 대한 인간의 접근 불가성을 수긍하는 고등종교들의 태도를 비틀어 활용함으로써, 신이란 이해할 수도, 납득하기도 어려운 이상한 존재자라는 인식을 심어주려 한다.
각 고등종교에서 가르치는 신은 분명 신비 속에 머무르고 있지만, 일관된 성품이나 속성을 가지고 인류에게 스스로를 알리고 있다. 반면 <지옥>이 그려내는 신은 스스로를 계시하거나 인간의 깨달음을 통해 자신을 알리는 일을 전면 차단하고 있다.
이는 연상호 감독의 일관된 반종교적 작품 성향을 드러내는 일면이다. 반종교란 모든 종교의 기본 가치 자체를 부정하는 태도로서, 종교가 삶에 아무 의미도 없고 관심도 없다는 무종교의 태도보다 종교에 더 적대적이다.
무종교에서 종교나 신앙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삶의 요소지만, 반종교에서는 종교나 신앙이 우리 삶을 방해하고 기만하는 요소, 박멸해야 할 요소로 여겨진다.
▲도무지 헤아릴 수 없는 신의 뜻을 집행하는 흉물스러운 지옥행 형벌의 집행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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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화화된 신앙: 답없는 신의 행사와 무지몽매한 인간의 해석
<지옥>에서 엿보이는 이러한 태도는 포이어바흐와 마르크스의 반종교적 인간 이해를 수용, 계승하는 진보 계열 사상 집단이나 정치 집단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포이어바흐는 그의 저서 <기독교의 본질>에서 인간이 대상화한 기독교의 하나님이 실은 인간 자신의 이상적인 속성들을 신이라는 관념에 투사한 것에 불과하다고 가르쳤다.
헤겔의 관념론적 변증법을 무신론적으로 변형해서 계승한 마르크스는 인류 진보의 최종 단계에서 종교는 사라지고 진정한 진리를 열어 밝히는 철학이 득세하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예견했다.
물론 마르크스가 말하는 철학은 유물론적 변증법에 기반을 둔 자신의 사회철학, 공산주의 사상이었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그의 말은 종교적 믿음이나 신앙 전반을 비판하는 가운데 그 소멸을 바라는 반종교적 태도가 집약된 발언이다.
드라마 <지옥>에서 신과 종교 양측을 대하는 연상호 감독의 태도가 바로 이와 같다. 이 작품 속에서 지옥에 빠질 것을 예고하고 이를 집행하는 초월적 존재자들은 모두 혐오스럽고 엉성한 CG로 표현되어 있다. 또한 그것들의 행동 의도나 특성 또한 종잡을 수 없을만큼 난잡한 것으로 비춰지고 있다.
이 작품이 대상화한 신이란 흉물스럽고, 폭력적이며, 어떤 법도도 없이 인간의 삶에 난입하는 신이다. 그러면서도 그 뜻이나 속성을 제대로 계시하지 않는다. 신비가 아니라 제멋대로의 임의성 속에 빠져 있는 신인 것이다.
결국 그 신의 행위에 대한 의미 부여는 인간 편에서 사이비 종교의 형태를 빌어 시행하게 된다. 이것이 <지옥>이 설명하는 종교 탄생의 메커니즘이다.
이로써 비단 사이비 종교만 아니라 사회에서 정통 고등종교로 인정받는 기독교 역시, 그 시작은 막무가내로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는 신에게 인간이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의도와 속성을 부여하는 일이었다는 생각이 여실하게 드러난다.
이로써 <지옥>은 기독교의 원죄 교리뿐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그에 따른 계시 및 구원 사역에 대한 모든 믿음이 헛것이라고 설파한다.
지극히 염세적인 삶의 태도로 일관하며 한없이 자기중심적으로 신을 이해하고 재단하는 사이비 종교 ‘새진리회’ 창시자 정진수(유아인 분)는 일면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대한 희화화로 볼 수 있다.
신의 뜻을 온전히 파헤친 선지자의 이미지가 정진수라는 인물에게 투사되고 있다. 부귀나 권력에 대한 집착 없이 우수에 찬 태도, 늘 현실 너머를 바라보는 태도로 일관하는 그의 삶은 작품 속에서 존경스럽다기보다 가련하고 허망한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런 그의 삶을 존경하는 것은 오로지 무지몽매한 대중이다. 사리를 분별할 줄 아는 이들, 민혜진 변호사(김현주 분)나 비밀결사 ‘소도’의 구성원들은 새진리회의 기만적 본질을 온전하게 파악하고 있다.
▲신의 뜻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새진리회'의 창시자, 염세적인 삶을 영위하는 교주 정진수(유아인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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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수의 ‘지옥행’ 이후 새진리회의 수장 자리를 이어받는 2대 교주 김정칠은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삶의 행적을 권력과 부의 재료로 변질시켰던 중세의 부패한 교황들을 패러디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의 뜻을 임의로 해석하면서 별다른 교의적·신학적 근거가 없는 교령을 남발하고, 자신들의 권위에 순복하지 않는 모든 자들을 이단시하고 형벌했던 그들의 행적은 작중 대한민국 권력을 손에 쥐고 폭주하는 새진리회의 김정칠과 그를 따르는 사제들의 모습과 흡사하다.
특히 ‘시연(지옥행 형벌 집행)’ 예고된 이들을 모조리 흉악한 죄인으로 낙인찍고 그 가족들마저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행각은 중세 이단 재판의 악행을 그대로 현대 배경 속으로 옮겨온 듯하다.
어설프고 흉물스럽게 생긴 신의 집행자들을 통해 성사되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신의 행사에 제멋대로 일관된 원칙과 의미를 부여하는 사이비 종교의 발흥, 그리고 그에 대한 대중의 광신적 호응은 결국 인류 역사에서 기독교 신앙이, 그리고 여타 종교들도 어떻게 사회를 유지하는 강력한 요인으로 자리잡게 되었는지에 대한 연상호 감독 식의 설명이라고 볼 수 있다.
▲<지옥>의 감독 연상호. 그의 작품들 속에는 일관되게 마르크스적 반종교의 태도와 시각이 확인된다.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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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그의 풀이법은 분명 편향적이다. 사이비 종교들의 거짓됨과 악행을 폭로하려는 의도에는 일정 부분 공감되는 바가 있다.
그러나 사이비 종교들과 여타 고등종교, 특히 기독교와의 본질적 차이를 전혀 들여다보지 않으려는 일방적인 반종교의 태도가 신에 대한 믿음의 선하고 올바른 측면을 무시하고 은폐하는 우를 범하게 만들고 있다.
오로지 신앙으로만 지탱될 수 있는 윤리, 선행, 자기반성의 가치는 전혀 살피지 않은 채, 신앙에 관련된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만 평가하는 마르크스적 종교관에 심취해 있는 것이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