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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소식2년의 자발적 유배, 드라마가 살렸다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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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숲속의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신고 회원메모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movieli.st 작성일21.11.08 10:53 4,64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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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의 자발적 유배, 드라마가 살렸다

  • 입력 : 2021.11.08 10:43:00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출처 : tvN 나의 아저씨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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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지리한 과정이었다. 터널은 끝없이 이어졌다. 학당을 운영하면서 <책으로 다시 살다>, <글쓰기로 나를 찾다>(이상 북바이북), 2권의 책을 기획했는데, 거기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체험을 이제 내가 고스란히 재현했다. 2년간 사회적 관계는 거의 차단하다시피 했다. 그나마 코로나 상황이 강제 근신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멍하니 좀비처럼 일상을 유지하는 데 그쳤다. 시간이 해결해 주는 일이기도 했고, 어떤 계기가 필요하기도 했다.

기쁨도 슬픔도 잇따라 온다고 했던가. 행운과 불행도 마찬가지일 터다. 2019년은 상처로 얼룩졌다. 외부로 폭발하지 않으니 내부에서 폭발했다. 내상이 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인문의역학 연구공동체 감이당을 이끌고 있는 고미숙 샘을 우연히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이렇게 툭 던지셨다. 

“작년에 많이 힘들었죠?”

“어떻게 아셨어요?”

“신금(辛金) 사주가 작년에 뭘 해도 되는 일이 없어요. 감이당에도 그런 신금 사주 가진 친구가 있는데, 하는 일마다 되는 일이 없어요. 너무 조바심 내지 말아요.”

조금 위로가 되었지만, 그때뿐이었다. 하도 답답해 타로수비학을 하는 지인한테도 물어봤더니, 그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같은 사주를 보니 그럴밖에. 사주는 미신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주는 단순한 점성술이 아니라 우주의 생성 원리, 동양고전인 주역에 기반한 음양오행론이니까. 설사 사실과 다르다 해도 힘들 때는 그것도 위로가 되니까 맹신하지만 않으면 될 일이었다. 삼재라고 있지 않은가. 액땜을 한다 생각하기로 했다.

긴 슬럼프가 계속되자 엎어진 김에 쉬어가자는 심정에다 한동안 사회적 고립을 실천해보면 어떨까 궁금하기도 했다. 자발적 유배, 도시에 살고 있지만 산골생활이자 섬생활을 실천해 보기로 했다. 블로그나 페이스북 같은 SNS는 물론 개인적인 연락도 거의 하지 않으니 다들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고, 더러는 학당은 계속 운영하고 있는지 물어보는 지인들도 있었다. 생존 신호만 보냈다. 아웃사이더 성향 그대로를 발현한 셈인데, 그간 남아도는 시간은 유튜브를 하거나, 넷플릭스에서 지난 드라마를 보는 낙으로 버텨냈다.

그러다 만난 게 드라마 <나의 아저씨>였다. 그간에 <슬기로운 감빵생활>이나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지루한 일상을 견디게 하는 재기발랄한 캐릭터들의 향연에 자주 웃음 짓고 위로를 받기도 했지만, <나의 아저씨>는 결이 또 달랐다.

한 소녀가장의 팍팍한 삶과, 찌질하고 너덜너덜해진 삶을 부여잡고 살아내는 형과 동생을 둔 바른생활 중년 아저씨의 삶이 이뤄내는 공명은 생각 이상으로 묵직한 감동을 이끌어냈다. 주말동안 밤새워 16부작을 몰아보고 나니, 가슴 한켠이 뻥 뚫려버린 느낌이었다. 보는 내내 가슴을 울컥하게 하는 장면들이 먹먹하게 스며들었다. 특히, 밤이면 아저씨들이 모여드는 동네의 허름한 술집은 중년 남성들의 판타지를 채워주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판타지임에도 현실감을 느끼게 하는 건 이 드라마의 힘이었다.

등장 인물 하나 하나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애정을 쏟아 만들어냈는지 작가의 시선이 따뜻하고 인문학적이었다. 허투루 만들지 않은 짜임새 있는 연출까지 그야말로 명작이었다. 오죽했으면, 세계적인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자신의 SNS에 이 작품을 추천했겠는가. 

이런 드라마라면 노희경이라는 걸출한 작가가 있다. 그런데, 경찰들의 애환을 잘 살려냈지만 극화를 위해 다소 무리한 설정이 눈에 거슬렸던 <라이브>보다 더 잘 만들어냈다. 평소라면 보지 않았을 드라마였다. 팬데믹 상황이 집에서 고립된 상황을 만들었고, 넷플릭스라는 바다의 비자발적 강태공이 되어 건져 올린 작품이었다. 누구에게는 뒷북일 수 있지만 놓친 명작을 뒤늦게 복기해서 보는 재미도 있었다. 인생이 빨리 서두른다고 좋은 것도 아니고, 늦게 간다고 아쉬워 할 것도 아니지 않는가. 

그 즈음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해롱이와 문래동 카이스트, 팽부장이 자주 보고 싶었고, <이태원 클라쓰>의 조이서와, <라이브>의 오양촌 경위의 근황이 궁금하고,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익준이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골방에서의 유폐기간 동안 드라마 속 인물들을 통해 응원 받고, 또 위로 받았다.

그 다음에 만난 드라마가 <미스터 션샤인>이었다. 시대극을 좋아하는 데다 역사의식마저 있는 수작을 오랜만에 만난 기쁨이 컸다. 구한말이나 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는 거의 망한다는 대부분의 예상을 깼다는 점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할 만한 작품이었다. 조금 과한 플래쉬백이 거슬리긴 했지만, 뛰어난 영상미에 공들인 연출, 사계절을 담은 긴 제작기간, 어떤 배역 하나 구멍 없는 연기까지 단연 발군이었다.

무엇보다 전편을 흐르는 살아 있는 캐릭터들이 어울리는 대본의 힘이 컸다. 그간 <시크릿 가든>, <상속자들>, <태양의 후예>, <도깨비> 등을 히트시키며, ‘멜로 장인’으로 이름을 떨친 김은숙 작가가 드라마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들을 만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나만 하더라도 망국의 설움이나 핍박받는 조상들의 역사를 복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시대와 배경이더라도 그 소재를 어떻게 역사적인 의미로 이끌어내느냐는 작가들의 역량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첫 시작이 어렵지 한번 길을 닦으면 그 다음은 쉽게 이어갈 수 있다.

처음에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드라마를 봤는데, 연이어서 보다 보니 어느덧 나도 작품 속 인물들처럼 성장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각각의 캐릭터들에 감정이입을 하다 보니, 이런 생각마저 들었다. 생존도 장담할 수 없는 조건에서 독립운동을 하고, 또 사랑을 하면서 역경을 헤쳐간 그들에 비해 나의 문제는 너무 하찮게 여겨졌다.

아무리 힘들어도 저 당시의 엄혹한 시절보다는 낫지 않겠느냐는 심정이었다. 작품 속 인물들에 위로받고, 치유되는 경험들은 이제 세상 밖으로 나설 용기를 주었다. 그래서, 다음으로 찾은 게 구한 말, 그리고 일제강점기의 흑역사를 만든 일본의 근대사를 다룬 책들이었다. 마침 교양예능 <벌거벗은 세계사>라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다루기도 했다. 그렇게 드라마에서 시작된 삶의 추진력은 자연스럽게 역사와 역사소설로 이어졌다.

신기수 우버객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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