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승리호>가 전한 감격
- 김세진/ 울주세계산악영화제 프로그래머
- 승인 2021.02.08 22:30
1998년 종로의 한 카페, 문학을 전공하다 영화 연출을 해보겠다고 학교를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예전 학교 선배와 이야기를 나누다 눈물을 터뜨린 적이 있었다. 왜 한국은<쥬라기 공원>같은 영화는 못 만들어내냐는 선배의 말에, 한국영화의 제작비 수준이며 내수시장의 한계 등 이제 막 영화과에 진학한 초짜가 설명하기엔 버거운 좁은 논리를 펴다 제풀에 분에 못 이기고 말았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산업화와 서구화를 동일개념으로 받아들였던 20세기의 우리에게 문화예술은 항상 주변인으로서의 열등감을 갖게 만드는 분야였다. 어린 시절부터 서구의 문화를 선진적 모델처럼 받아들였고 전문가가 되기 위해선 유학이 필수적이었으며, 노벨문학상과 칸영화제에 발을 들이고자 연연하는 인정욕구가 지배했다.
코로나 때문에 결국 넷플릭스에서 공개된<승리호>를 보았을 때, 영화<기생충>과 방탄소년단(BTS) 현상과는 조금 다른, 예상치 못한 감격이 있었던 건 그런 이유다. 한국 상업영화가 잘 시도하지 않았던 SF 장르에 다국적의 언어가 등장하고 헐리우드 영화나 시도했던 우주 공간에서의 스펙터클을 제공하는 국산 영화라니! 지구를 위협하는 행성의 충돌이나 외계인의 침공을 막아내는 것은 그동안 항상 미국인들이었다. 남아공 출신 감독 닐 블룸캠프의<디스트릭트 나인>(2009)이 뉴욕이나 워싱턴이 아닌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지역에 외계인을 떨구어 놓았을 때도 굉장한 신선함을 느꼈지만, 이조차도 피터 잭슨과 미국 독립영화자본이 제작에 참여한 사례였다.
<승리호>는 전 세계SF영화로서 선도적인 작품은 분명 아니다. 헐리우드 SF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신선함보다는 익숙함이 더 눈에 띈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 작품은 그저 ‘국뽕 영화’가 아니다. OTT에 실려 전세계인에게 충분한 재미를 줄 수 있는 웰메이드 무비이자 동시에 한국인들은 더 많이 재미있어할 우리만의 색깔을 충분히 담고 있다. 지구를 지키는 영웅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우리 스스로만 어색해하지 않으면 될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