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호 (2022.08.17) [176]
[정덕현의 K컬처 톺아보기(6)] '한산: 용의 출현', '외계+인 1부'로 본 극장의 미래
무엇이 여름 블록버스터 시장에 찬물을 끼얹었나
쏟아지는 ‘묵힌 대자본 영화’, 관객 입소문에 흥행 희비 갈려
테마파크 같은 ‘체험관’으로 진화하며 OTT와 시장 양분할 듯
▎7월 27일 개봉한 김한민 감독의 영화 [한산: 용의 출현]은 화려한 캐스팅과 압도적인 해상전투 장면으로 금세 1000만 관객을 돌파할 것처럼 보였으나, 예상 외로 누적 관객 수가 빠르게 늘지 않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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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은 지난 5월부터 코로나19 엔데믹(endemic·풍토병으로 굳어진 감염병) 분위기를 맞이하며 다시 본격적인 영업에 들어갔다. 그런데 7~8월 여름 블록버스터 시즌을 맞아 쏟아져 나온 영화들의 희비가 엇갈린다. 무엇이 이런 결과들을 만들었고, 극장의 어떤 미래를 예고하는 걸까.
극장에서의 영화 관람은 역시 팝콘과 함께해야 제맛이었던 걸까. 지난 4월 25일 극장에서의 취식 제한 해제는 이제 극장에서의 영화 관람이 안전하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마침 개봉한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580만 관객을 동원하며 수혜를 입었고, 5월 18일 개봉한 [범죄도시2]는 [나의 해방일지]의 ‘손석구 신드롬’과 시너지를 내며 가뿐하게 10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이런 성적은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여름 블록버스터 시즌을 준비하는 영화들에는 고무적인 사건이 됐다. 6월 22일 개봉한 [탑건: 매버릭]이 호평과 더불어 관객을 끌어모으자 기대감은 더욱 커졌고, 7월 20일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 1부]가 개봉하며 본격적인 블록버스터 시즌의 막이 올랐다.
류준열·김우빈·김태리·소지섭·염정아·조우진·김의성·이하늬…. [외계+인 1부]는 그 배우들의 면면만 봐도 전형적인 여름 블록버스터 영화라는 게 실감 난다. 게다가 감독은 [암살], [도둑들]의 흥행으로 이른바 ‘쌍 천만 감독’(영화 두 편이 모두 1000만 관객을 넘어선 영화감독을 이르는 별칭) 반열에 오른 최동훈이다.
스케일도 어마어마하다. 고려 시대와 현재를 넘나들고, 외계인이 UFO(미확인 비행물체)를 타고 그 시공간을 날아다니는 세계관은 이 영화가 [터미네이터]와 [맨 인 블랙]에 [전우치]가 더해진 듯한 퓨전의 끝판왕임을 보여준다. 1부와 2부로 나누어진 이 작품은 1부 순제작비만 무려 330억 원이 들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 외의 참패로 이어졌다. 8월 초까지 겨우 140만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원인은 감독의 과잉된 욕망이 이를 수용하는 관객과의 소통에 실패한 것이다. 사극과 현대극을 넘나들고, 타임리프(과거 또는 미래로의 시간 여행)와 SF(공상과학), 무협 판타지 같은 이질적인 장르들이 뒤섞이다 보니 관객이 어느 장단에 맞춰 몰입해야 할지 애매해진 상황이 됐다. 장르를 다양하게 경험하고 이해하는 관객이라면 이러한 혼용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분명 있었지만, 일반 관객들 입장에서는 너무 과한 장르의 퓨전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결국 “재미없다”는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관객 수는 급감했고, 대작 개봉을 줄줄이 앞둔 멀티플렉스들은 이 영화의 개봉관 수를 빠르게 줄여나갔다. 오히려 [탑건: 매버릭]이 입소문을 타고 다시 급부상했고,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던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의 N차 관람 바람이 불었다.
'외계인 1부'의 예상 외 부진이 시사하는 것
한편 7월 27일 개봉된 [한산: 용의 출현]은 시작부터 호평을 받으며 금세 1000만 관객을 돌파할 것처럼 보였다. [명량]으로 무려 1700만 관객을 돌파해 국내 역대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김한민 감독의 작품인데다, 마침 좋은 반응을 얻었던 [헤어질 결심]의 남자 주인공 박해일이 이순신 장군을 연기한 점이 흥행에 청신호로 보였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감과 호평에도 불구하고 [한산: 용의 출현]은 예상 외로 누적 관객 수가 빠르게 늘지 않고 있다. 8월 초까지 400만 관객을 간신히 넘어섰을 뿐이다.
여기에 8월 3일 개봉한 한재림 감독의 [비상선언] 역시 그다지 분위기가 좋지 않다. 개봉 전 송강호·이병헌·전도연·김남길·임시완 등 화려한 출연진으로 주목받은 이 영화는 개봉 첫 주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관객들의 혹평을 받으며 영화 자체가 ‘비상을 선언’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어째서 여름 블록버스터 시즌의 열기가 금세 식어버렸을까? 가장 큰 원인은 코로나19로 인해 개봉이 적체된 대작들이 한꺼번에 몰려나오면서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과거 블록버스터 시즌처럼 관객들을 빨아들이기 전에 또 다른 작품이 등장하면서 집중력이 분산됐다. 여기에 높아진 눈높이와 취향에 대한 목소리가 커진 관객들의 입소문이 더해지면서 개봉관 수는 조변석개(朝變夕改)하게 됐다. 결국 호평을 받은 작품이든 혹평을 받은 작품이든 한 작품으로 관심이 쏠리기보다는 분산되면서 일종의 ‘개봉관 나눠 먹기’ 구조가 형성됐다. 이토록 많은 대작이 여름 블록버스터 시즌에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1000만 관객은 요원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게 됐다.
여기에 또 다른 변수로 작용한 건 비싸진 영화 티켓 가격과 코로나19 시국을 거쳐 또 하나의 영화 관람 방식으로 자리한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이다. 코로나19 이전만 해도 1만2000원이던 티켓 가격이 현재는 1만5000원으로 올랐다. 2008년까지만 해도 8000원을 유지했던 티켓 가격이 2013년 1만원을 넘기 시작하면서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는 일이 부담되기 시작했던 게 사실이다. 티켓 한 장에 1만5000원이면 연인이 함께 영화를 보러 가는 일은 상시적이기보다는 이벤트적인 일이 될 수밖에 없다. 팝콘과 콜라까지 사 먹으면 거의 5만원 상당의 비용이 든다. 그러니 여름 블록버스터 시즌에 여러 작품을 두루 보기보다는 한 작품을 선별해 보는 소비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 정도 가격이면 OTT 플랫폼에 가입해, 한 달간 영화나 드라마 같은 콘텐트를 마음껏 소비할 수 있다. ‘영화는 극장’이라는 등식은 이미 깨어진 지 오래다. 코로나19로 인해 극장을 찾지 않았던 관객들은 이미 OTT 플랫폼을 통한 영화 소비를 경험했다. 예를 들어 [승리호] 같은 작품은 코로나19가 지나가길 기다리다 결국 ‘넷플릭스’를 통해 서비스하게 됐다. 박신혜와 전종서가 호연한 공포 스릴러 [콜] 역시 마찬가지다. 즉 넷플릭스 같은 OTT 플랫폼을 통한 영화 소비 경험은 “굳이 극장에 가야만 하나”라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또 ‘디즈니플러스’ 같은 OTT 플랫폼이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나 [나일강의 죽음], [이터널스] 같은 영화들을 극장 개봉 후 멀지 않은 시점에 서비스하면서 조금 기다려서 OTT 플랫폼으로 영화를 보려는 소비 욕구도 생겨났다. 여기에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같은 글로벌 OTT 플랫폼이 선보이는 오리지널 영화 중에는 아카데미 영화제 등에서 수상하는 작품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디즈니플러스의 [타미 페이의 눈]이나 넷플릭스의 [파워 오브 도그] 같은 작품이 단적인 사례다. 또 마틴 스코세이지, 봉준호, 제인 캠피언 같은 저명한 감독들이 OTT 오리지널 영화를 제작하면서 OTT 오리지널 영화를 향한 인식 자체가 달라졌다.
흥행·작품성 갖춘 OTT 오리지널 영화 많아져
▎7월 20일 개봉한 최동훈 감독의 영화 [외계+인 1부]는 순 제작비만 330억 원이 투입된 블록버스터지만, 과도한 장르 혼합으로 관객의 공감을 얻는 데 실패했다는 평을 받았다.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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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러한 변화 속에서 극장은 어떻게 진화해 갈까. 물론 코로나19가 만들어낸 비틀어진 상황들이 만든 결과가 적지 않지만, 그래도 달라진 환경이 코로나19 이전으로 되돌아갈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극장은 새로운 진화를 요구받고 있다. 그 이유는 관객이 달라져서다. 관객들은 극장용 영화와 OTT용 영화를 구분해서 보기 시작했다. 즉 ‘극장에서 봐야 제맛’인 영화가 있고 ‘안방극장에서 즐겨도 되는’ 영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올해 상반기 1000만 관객을 동원한 [범죄도시2] 같은 작품은 극장에서 다른 관객들과 함께 압도적인 액션을 보는 맛이 분명히 있는 영화다. ‘마동석’이라는 하나의 캐릭터가 된 배우가 존재하고, 그가 주먹을 내지를 때마다 나는 폭발음이 주는 카타르시스는 아무래도 극장이 훨씬 실감을 주기 마련이다. 또 [탑건: 매버릭] 같은 작품 역시 극장에서 봐야 제대로 실감이 나는 영화다. 전투기가 엔진을 켤 때 나는 굉음은 극장 의자에 진동이 느껴질 정도다. 그간 3D, 4D같이 보다 실감 나는 시각적 체험을 향해 진화해왔던 극장들은 최근 몇 년 동안 ‘돌비 애트모스’(Dolby Atmos ·돌비 연구소가 개발한 객체기반 3D 서라운드 사운드 기술)로 나아가며 관객이 전후좌우로 소리가 날아다니는 입체적인 청각을 체험할 수 있게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탑건: 매버릭]은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 모두 이러한 극장의 진화에 최적화된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여기에 영화 스토리 자체가 하나의 전투기 조종 시뮬레이션 게임 같은 성격을 갖고 있어 극장이 아니고서는 그 묘미를 제대로 느끼기가 어렵다.
[한산: 용의 출현]이나 [비상선언] 같은 작품도 극장에서 봐야 실감이 느껴지는 블록버스터다. [한산: 용의 출현]의 경우는 압도적인 해상전투 장면이 무려 50분 넘게 지속되는데 극장의 커다란 스크린으로 봐야 그 맛이 제대로 느껴진다. [비상선언] 역시 비행기에서 벌어지는 테러를 소재로 하는 작품이기에 실제 그 안에 갇혀 있는 듯한 실감이 극장에서 더 효과적으로 느껴지는 영화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 성공작이 되지는 않는다. 여기에서 중요해지는 건 관객들이 느끼는 ‘만족감’이다. 물론 작품성과 완성도가 주는 만족감도 있지만, 아무래도 극장에서 관객이 더 원하는 만족감은 보다 직접적인 효과를 느낄 수 있는지 아닌지에 가깝다. 즉 행복한 느낌을 주거나 충분히 즐겁게 해줘 극장을 나설 때 돈이 아깝지 않다고 여겨지게 하는 그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영화를 보며 시원시원한 경험을 하게 해주는 [한산: 용의 출현]과 불편함을 통한 현실 인식과 슬픔을 꺼내놓는 [비상선언]이 왜 관객 입장에서 만족감의 차이를 보이는지 알 수 있다.
달라진 관객, 극장은 어떻게 진화해갈까
▎마동석·손석구 주연의 범죄액션 영화 [범죄도시2]가 코로나19 엔데믹 시대 첫 1000만 관객 영화로 이름을 올렸다.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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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극장보다는 OTT 플랫폼을 이용한 안방극장에 훨씬 더 어울리는 영화들도 분명히 있다. 박찬욱 감독은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체험이 얼마나 다르고 가치 있는가를 말했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보면 [헤어질 결심] 같은 영화는 극장보다는 OTT 플랫폼을 통해 더 깊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인 게 사실이다. 여러 차례 봐야 그 맛을 느낄 수 있고, 마치 퍼즐을 풀듯이 영상의 기호들을 해석해나가는 재미 또한 쏠쏠하기 때문이다. 그토록 호평이 쏟아졌지만, 극장에서 170만 관객(8월 6일 기준)을 가까스로 넘긴 성적표는 이런 현실을 보여준다. 물론 영화의 미학이 극장이라는 공간을 통해서 더 극적으로 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결국 영화는 관객들의 선택에 따라 그 존재가치를 인정받을 수밖에 없는 장르다. 그렇기에 영화 역시 관객의 편의에 맞춰 극장이냐, OTT 플랫폼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러한 변화는 극장이 갈수록 ‘체험관’으로서 일종의 테마파크 같은 공간으로 변해갈 거라고 예상하게 한다. 이미 극장은 시각적·청각적 체험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해왔고 그렇게 독보적인 공간을 구축함으로써 관객에게 극장을 찾는 이유를 제공해왔다. 이것은 2000년대 이후 멀티플렉스의 시대가 열리면서 지금껏 극장이 진화해온 방향성이다. 물론 테마파크화하는 극장과 OTT 플랫폼 같은 안방극장으로 양분되는 영화 소비가 영화의 다양성을 해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게 현실이다. 물론 이를 위한 대처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그런데도 영화를 소비하는 이 두 가지 도저(到底)한 흐름은 어쩌면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극장의 미래를 보여주는 게 아닐까.
※ 정덕현 - 대중문화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MBC 시청자 평가원, JTBC 시청자 위원으로 활동했다. 또 백상예술대상, 대한민국 예술상 심사위원이며 SBS [열린TV 시청자 세상], KBS [연예가중계] 등 다양한 방송에 출연했다. 저서로 [숨은 마흔 찾기],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 [웃기는 레볼루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