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의 세상에 빠져 살던 시절이 있었다.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녹정기>를 읽다 보면 송나라, 금나라, 원나라 시대를 따라 영웅들과 여러 민족 간의 끝없는 투쟁의 세계에 빠졌다. 하늘을 날며 강호의 의리를 논하는 무협의 세계는 실제 역사가 배경이지만 모두 김용이라는 천재 작가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가상 세계다. 무협지 속 강호는 실제 세상보다 더 실제 같은 평행우주이면서 여러 다른 이야기가 서로 영향을 주는 멀티버스의 세계였다. 오늘날 전세계 사람들은 마블 스튜디오가 쏟아내는 메타버스, 멀티버스 세상과 함께 살고 있다. 영웅과 악당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다른 세상에 영향을 준다.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마블 유니버스이다. 이달 초, 새로운 마블의 이야기가 공개되었다.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영웅의 등장인데 영화가 아니고 드라마다. 디즈니플러스에서 공개된 <문나이트>. 총 6부작 중 4편이 공개됐다.

 

영국 런던의 박물관 기프트숍에서 일하는 스티븐은 하루하루가 엉망진창이다. 불면증에 시달리는데 잠깐이라도 잠들면 악몽을 꾸고 전혀 엉뚱한 곳에서 깨어나기도 한다. 잠들지 못하는 이 박물관 직원의 유일한 취미는 고대 이집트를 연구하는 것이다. 어느 날, 자신과 몸을 공유하고 있는 또 다른 자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 다른 나의 이름은 마크. 그는 고대 이집트 암미트 신을 숭상하는 종교집단과 싸우고 있다. 그리고 이집트 달의 신 콘슈까지. 모두 종교집단의 리더 해로우를 저지하려고 힘을 모은다.

 

이들의 대결은 결국 가치관의 충돌이다. 앞으로 죄를 지을 사람은 미리 단죄해야 한다는 해로우. 이미 죄를 지은 사람만 단죄해야 된다는 스티븐과 콘슈. 스티븐은 해로우에게 질문한다. “30년 뒤에 저지를 죄 때문에 아이가 죽는 것이 정당한가.” 해로우는 답한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살인은 어쩔 수 없다”고. 악인들이 완벽히 제거된 지상낙원을 꿈꾸는 사람들과 이를 거부하는 사람들. 그래서 <문나이트>에는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운명을 거부하는 톰 크루즈의 모습도 보이고,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의 새진리회와 유아인의 모습과도 겹쳐 보인다.

 

마블 영웅들에게 필수적인 슈트도 매우 재미있다. 한 사람의 몸을 스티븐과 마크 두 사람이 사용하기에 각자 소환하는 슈트가 다르다. 마크는 마블 히어로다운 멋진 슈트를 소환하지만 스티븐에게 등장하는 슈트는 말 그대로 그냥 양복이다. 서로를 극혐하는 두 자아가 아웅다웅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문나이트>만의 매력이 될 것 같다. 한 사람의 몸에 두 사람이 있지만 배우는 당연히 한 사람이다. 오스카 아이작. 해로우 역은 이선 호크이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로맨틱 오빠가 악당으로 변했지만 여전히 멋지다. 21세기 글로벌 무협 세상. 마블의 새로운 영웅의 이야기가 이렇게 또 시작되었다.

 

씨제이이엔엠 피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