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파친코’는? 한국 이야기에 열 올리는 할리우드

HBO맥스 오리지널 드라마 ‘옷장 너머로’ 촬영 현장. HBO맥스 브라질 SNS 캡처

미국 회사가 브라질을 배경으로 제작하는 ‘K-드라마’. HBO맥스 오리지널 드라마 ‘옷장 너머로’(Além do Guarda-Roupa)를 한 줄로 정리하면 이렇다. ‘옷장 너머로’는 브라질 상파울루에 사는 평범한 10대 소녀가 옷장에서 공간을 넘나드는 포털을 발견한 뒤, 이를 통해 서울에 사는 인기 아이돌과 만난다는 내용이다. 극 중 K팝 아이돌 그룹 액트 멤버로는 그룹 스트레이 키즈 출신 김우진, 그룹 뉴키즈 멤버 진권, 그룹 재로 멤버 윤재찬, 배우 이민욱 등 모두 한국인이 캐스팅됐다. 10대 소녀 캐롤 역을 맡은 샤론 블랑쉬는 한국계 브라질 배우다.

HBO맥스는 어쩌다 ‘K-드라마’ 제작에 뛰어들었을까. 워너브라더스 제너럴 엔터테인먼트 최고 책임자 토마스 얀켈레비치는 “남미 지역에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팬이 매우 많다. 우리는 이 드라마의 가능성을 믿는다”고 말했다. 실제 브라질 등 남미 지역에선 슈퍼주니어, 카드, 뉴키드 등 K팝 가수들이 인기다. 작품에 출연하는 한국 배우들도 전·현직 K팝 아이돌 출신이 대부분이다. 출연 배우 소속사 관계자는 “오디션 당시 ‘외국어를 못해도 괜찮다’고 전달 받았다. 촬영 때도 한국어와 포르투갈어를 섞어 쓰는 걸로 안다”면서 “드라마 배경인 상파울로 봉헤찌로는 한인타운으로 유명한 곳이다. 작품을 통해 한국 문화를 보여주려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애플TV+ ‘파친코’. 애플TV+

한국이 글로벌 시장에서 ‘이야기의 보고’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세계적으로 흥행한 데 이어, 최근 애플TV+가 제작한 ‘파친코’가 호평 받으면서다. 애플TV+가 1000억원을 들여 제작했다고 알려진 ‘파친코’는 해외에서 “눈부신 한국 서사시”(영국 BBC), “쉽게 볼 수 없었던 보석”(미국 포브스)으로 평가받는다.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간 재일교포(자이니치)와 그 후손들의 삶을 다룬 이야기로 이민 공동체의 공감을 산 덕분이다.

한국인 이민자를 다룬 이야기는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디즈니가 서비스하는 OTT 훌루는 미국으로 입양된 한국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 ‘아메리칸 서울’을 제작한다. 주인공이 직장을 찾으러 서울에 갔다가 자신이 왕조 후계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아예 한국인 창작자와 손잡는 사례도 있다. 드라마 ‘열혈사제’ ‘펀치’ 등을 연출한 이명우 PD는 올해 초 미국 유명 엔터테인먼트 에이전시 CAA와 계약했다. 이 PD와 CAA는 실화를 토대로 한국계 미국인의 음악적인 삶을 다룬 이야기를 구상 중이다. 작품에는 한국어와 영어가 동시에 쓰인다고 알려졌다.

소니픽쳐스 애니메이션 ‘K팝 : 데몬 헌터스’. 소니픽쳐스 홈페이지 캡처

‘옷장 너머로’처럼 K팝 가수를 앞세운 작품도 있다. 미국 소니픽쳐스 애니메이션이 만드는 ‘K팝 : 데몬 헌터스’(K-pop : Demon Hunters)다. 세계를 호령하는 인기 K팝 걸그룹이 비밀리에 데몬 헌터(악마 사냥꾼)로 활동하는 내용을 다룬 뮤지컬 액션 모험 장르 애니메이션이다. 한국계 미국인인 메기 강 감독이 애니메이션 ‘위시 드래곤’을 만든 크리스 애펄헌즈 감독과 공동으로 연출한다. 영화 ‘해운대’ ‘국제시장’으로 쌍천만 흥행을 이룬 윤제균 감독은 할리우드 프로듀서 린다 옵스트와 함께 ‘K팝 : 로스트 인 아메리카’(K-Pop : Lost in America·가제)를 제작한다. 미국 뉴욕에서 글로벌 데뷔를 앞둔 K팝 보이그룹이 실수로 텍사스에 도착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한 방송 관계자는 “한국 이야기를 향한 세계 시장의 관심이 확실히 커졌다. 협업 요청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보편적인 주제의식을 가진 한국 콘텐츠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면서 한국 창작자들의 기획력과 제작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것 같다”며 “그 속에 담긴 한국적 요소들이 눈에 띄게 되면서, ‘한국스러운 어떤 것’에 관한 궁금증이나 관심이 세계시장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중이라고 본다”고 짚었다. 애덤 스테인먼 워너브라더스 부사장도 한국콘텐츠진흥원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한국 제작사들과 더 많이 협업하는 관계를 만들고 있다”면서 “제작사와 스트리밍 서비스 기업들은 다양성이 두드러진 이야기를 찾고 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유능한 한국인 작가들의 작품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