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생각]①후한말 무정부 시대, '위·촉·오' 삼국 낳았다
황건적의 난 시작으로 십상시의 난, 동탁의 폭정 이어져
사실상 무정부 상태서 군웅할거, 각자도생, 이합집산
등록 2021-02-10 오전 12:05:00
수정 2021-02-10 오전 7:39:00
◇오늘의 강연 및 지성인
☆ 워-스트래티지(WarStrategy)
전쟁은 무기의 질, 병력의 수보다 어떻게 준비하고 어떤 전략과 작전을 바탕으로 전투를 수행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 한국전쟁을 시작으로 페르시아 전쟁 등 인류사의 향배를 결정지은 수많은 전쟁과 이에 얽힌 전략적 사유를 통해 개인과 국가의 행위를 이해하는 폭을 넓힌다.
☆ 최영진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중앙대에서 정치국제학과 교수로 재직.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장,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역임. 육군 및 해군 발전자문위원. ‘전쟁과 미술’ 발간. ‘현대군사명저를 찾아’, ‘군사고전 다시읽기’, ‘역사속의 군사전략’ 등 기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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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괄기획=최은영 부장, 연출=권승현 PD, 정리=유현욱 기자]“속지 말자 화장발, 잊지 말자 조명발.” 역사에도 이런 분칠이 있다면, 중국의 삼국시대를 빼놓을 수 없다. 나관중(1330~1400년)이 쓴 소설 ‘삼국지연의’를 필두로 만화, 드라마, 영화, 게임 등 2·3·4차 창작물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매번 서두를 장식하는 ‘도원결의’(유비, 관우, 장비가 복숭아나무 밭에서 형제의 의리를 맺음)조차 허구라니 허망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극적 이야기에 더 열광하기도 한다. 코로나19로 ‘집콕’(집에 콕 머무는 생활)족(族)이 늘면서 넷플릭스로 95부작 삼국지 드라마를 다시 보는 이들이 생겼고, 이에 질세라 출판사들도 재개정 판을 내놓고 있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문학동네는 ‘고우영 삼국지 올컬러 완전판’을, 창비는 ‘소설가 황석영이 옮긴 삼국지’를 잇달아 재출간했다.
이런 분위기를 감안해 ‘위대한 생각 : 워-스트래티지’ 여덟 번째 강연의 주제 역시 ‘삼국대전과 전략적 순간들’로 정해졌다. 등장인물이 많고 100년에 가까운 시간을 고려해 상·하로 나눠 풀어본다. 최영진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는 “삼국지연의는 팩트(사실)에 픽션(상상으로 꾸민 이야기)을 더한 팩션”이라며 “보다 정확한 얘기를 하기 위해서는 진수(233~297년)의 ‘삼국지’, 배송지(372~451년)의 ‘삼국지주’, 사마광의 ‘자치통감’(1084년) 등 정사를 중심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특히 진수의 ‘삼국지’는 위서 30권, 촉서 15권, 오서 20권, 총 65권의 방대한 분량이다.
삼국(위·촉·오)시대의 개막
최 교수는 삼국시대를 ‘황건적의 난’이 발발한 184년부터 전국이 통일된 280년까지로 규정했다. 위나라(220~265년), 촉나라(221~263년), 오나라(222~280년) 세 나라가 패권을 다투던 시기다. 이 때문에 가장 먼저 위나라가 세워진 220년을 삼국시대의 시작으로 보기도 한다. 후한의 영제(167~189년), 헌제(189~220년)가 집권하던 때를 포함한 이유는 삼국의 형성과정에서도 여러 의미를 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얼핏 지도를 보면 위, 촉, 오 삼국의 영토는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다”면서 “당시 인구밀도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위에 살았다. 촉이나 오에는 그리 많지 않았다”고 말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국력(힘)의 주요 척도 중 하나로 꼽는 오늘날과 달리, 과거에는 머릿수가 더 중요했다. 국제관계학에서도 인구의 증감이 국력(군사력)의 증감과 유의미한 상관관계에 있다는 게 정설이다. 다시 말해 “오와 촉의 힘을 합쳐도 위에 열세였다. 현격한 국력 차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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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견, 조조, 유비…군웅할거
이런 삼국을 세우는 데 기틀을 닦은 건 손견(155~191년), 조조(155~220년), 유비(161~223년)이다. 손견과 조조는 동갑내기이며 유비는 이들보다 여섯 살 아래다.
최 교수는 “손견은 강동 양주에서 대대로 명망 있는 집안 출신”이라며 “20대 초반에 황건적의 난에서 큰 역할을 해 장사태수, 요즘 군수 정도의 벼슬에 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오정후’라는 작위를 받았으며 190년에 ‘반(反) 동탁연합’이 낙양을 공격할 때에도 동참했다.
조조는 환관 조등의 양자인 조숭의 아들이다. 184년 황건의 난이 일어나자 기도위(수도수비대의 관직)로 임명돼 반란군 진압에서 공을 세웠다. 반 동탁연합의 기수로서 전국적 명망을 떨쳤다.
유비는 변변찮은 지방 출신으로 노식 선생 문하에서 수학했다. 유비는 황건적의 난 때 조조·손견에 비해 상대적으로 활약이 미미했다. 이후 사형인 공손찬에 의탁하는 처지가 된다. 최 교수는 “명문가 자제인 손견과 조조는 20대 초반에 주목을 받았으나, 유비는 멍석을 만들어다 팔아야 할 정도로 미천한 집에서 나고 자랐다”며 “유비와 같은 사람이 어떻게 나라를 세워 손견, 조조와 경쟁했는지는 삼국지를 읽는 좋은 포인트”라고 권했다.
황건적의 난, 십상시의 난…혼란을 겪다
세 사람의 운명이 처음 교차하는 지점이 바로 황건적의 난이다. 삼국지의 출발점이다. 한말 외척과 환관의 정쟁이 끊이질 않았고 백성들은 벼슬아치의 가렴주구로 허덕이고 있었다.
‘창천이사 황천당림 세재갑자 천하대길’(蒼天已死 黃天當立 歲在甲子 天下大吉·푸른 하늘은 이미 죽었고 누런 하늘이 일어나 갑자년에 천하가 흥할 것이다)
태평도의 구호로, 오행설에 따라 푸른 하늘은 한나라를 뜻하며 누런 하늘은 새 나라를 의미한다. 장각의 태평도가 중심이 된 농민봉기에서 황색 두건을 머리에 두른 이유이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가이 포크스 가면처럼 저항의 상징을 내세운 효시 격이다.
황건적의 난은 난세에 영웅의 등장을 예고하며 막을 내렸지만 황실 외척과 10명의 환관이 대립한 ‘십상시의 난’, ‘동탄의 권력 장악’으로 이어지며 혼란은 계속됐다. 동탁이 영제를 폐위한 뒤 헌제를 즉위시키고 태후를 살해하는 등 악행을 저지르자 반 동탁연합이 결성되기에 이른다. 동탁은 협공을 피해 황실을 불태우고 장안으로 천도한다. 최 교수는 “어린 황제가 독재자의 꼭두각시가 돼 버리면서 중앙권력이 지방권력을 통제할 수 없는 사실상의 무정부(아나키) 상태였다”면서 “이에 전국의 군웅들이 할거했다.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하는 현상타파 세력의 등장”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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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원술 대립구도에 제후들 이합집산 거듭
중앙이 통제력을 상실하면서 힘이 있는 자가 곧 법이자 정의가 되는 약육강식의 세계가 펼쳐진다. 최 교수는 아나키적 상황에서 형식상 황제인 헌제의 거취를 놓고 두 차례 전략적 순간을 맞이했다고 분석했다. 당시 가장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던 발해태수 원소, 기주자사 한복 등은 새로운 황제를 모시자고 주장한 반면 남양태수 원술, 서주자사 도겸 등은 반역 세력을 처단해 정통성을 회복하는 데 만족하자고 반박했다. 원소와 원술 형제 사이에 대립 구도가 형성된 셈이다. 이는 현대 정당정치에서 온건파, 급진파 간의 노선 차이에 견줄 수 있겠다.
맹주인 두 사람을 사이에 놓고 제후들끼리 이합집산이 벌어졌다. 원소의 책사 저수는 기·청·유·병 4주를 평정한 뒤 장안의 황제를 맞이하고 낙양의 종묘를 부활시키라는 대전략을 제시했다. 이에 맞서 원술 측은 공손찬, 도겸, 손견 등과 손잡은 채 조조를 쳤으나 패퇴하고 만다. 최 교수는 “원술이 초반 구도를 잘 잡았지만, 몇 번의 전투에서 패배함으로써 주도권을 상실했다”고 했다.
오히려 조조는 동에 서주, 남에 원술과 손견, 서에 동탁(후에 이각·각사) 등 적으로 둘러싸여 경우에 따라 존립이 어려울 수 있었지만 난관을 극복해낸다. 192년 청주의 황건적 잔당을 토벌해 자신의 군대에 편입시키더니 193년 가족의 원수인 도겸이 있는 서주를 공격한다. 그러나 복수심에 눈이 먼 듯 조조는 대학살을 자행하고 마는데 이는 두고두고 그의 잔혹함을 묘사하는 흑역사가 된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조조는 서서히 세력을 키워나간다.
195년 헌제가 낙양으로 도망치는 유랑 생활 중에 그의 신변을 두고 또다시 역사는 변곡점을 맞이한다. 정당성 확보를 위해 헌제를 품으라는 저수의 간언을 원소는 귀찮은 일로 치부하며 무시했다. 이에 반해 조조는 반대를 무릅쓰고 헌제를 옹립한다. 천자를 모시고 제후를 호령하려는 의도였다.(협천자영제후·挾天子領諸侯)
최 교수는 “명목상의 통치권자이긴 하나 한나라의 황제를 품는다는 건 자신의 행위에 정치적 권위를 확보하는 일”이라며 “정치가 무력이나 칼로 이뤄지는 것 같지만 말발(명분)도 서야 한다”고 했다. 이런 결단으로 조조의 영향력은 한층 커진다. 정국의 핵심은 ‘원소-원술’에서 ‘원소-조조’로 변화한다.
이후 조조는 원소와 결전에서 승리하며 화북 지역을 완전히 손아귀에 넣는다. 조조로부터 달아나 형주에 와 있던 유비. 그가 삼고초려 끝에 제갈량을 군사(군대의 우두머리)로 맞아들이면서 정세는 다시 요동친다. 최 교수는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융중대)가 어떻게 전개될지 다음 시간을 기대해 달라”고 이날 강의를 끝맺었다.
이데일리와 이데일리의 지식인 서포터스, 오피니언 리더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경제 인문학 토크 콘서트입니다. 우리 시대 ‘지성인’(至成人·men of success)들이 남과 다른 위대한 생각을 발굴하고 제안해 성공에 이르도록 돕는 프로그램으로, 지난해 이데일리 창립 20주년을 맞아 기획했습니다. ‘위대한 생각’은 매주 수요일 오후 6시 이데일리TV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