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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소식아프가니스탄의 비애 - 파르바나:아프가니스탄의 눈물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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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의 비애

탈레반 재집권 앞두고 보는 ‘파르바나…’

입력  2021.07.25 11:43

 

편집자주

주말 짬내서 영화 한 편 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이왕이면 세상사를 좀 더 넓은 눈으로 보게 해주거나 사회 흐름을 콕 집어주는 영화 말이에요. ‘라제기의 영화로운’은 의미 있는 영화 관람을 원하시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을 드리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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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바나: 아프가니스탄의 눈물'. 넷플릭스 제공

 

“전쟁의 격렬함은 마치 마약과 같아서 종종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중독된다”

영화 ‘허트 로커’(2009) 속 경구

아프가니스탄은 우리에게 멀고도 먼 나라입니다. 여러 전쟁으로 가기 힘들었던 곳이었던 데다가 2007년 한국인 피랍 사건이 벌어지면서 더더욱 금지구역처럼 여겨져 왔던 나라입니다. 1980년대 소련의 침공과 내전, 이슬람 근본주의 탈레반 정권의 수립, 미국과의 전쟁 정도로 이 나라를 접근해 왔습니다.

동서양을 잇는 지정학적 요충지인 아프가니스탄이 다시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2001년 진주하며 탈레반 정권을 몰아냈던 미군이 20년 만에 철수하면서, 탈레반이 다시 이곳을 장악하게 됐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1970년대 미군의 베트남 철수, 베트남 패망을 연상케 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기도 합니다.

탈레반은 이슬람 근본주의를 극단적으로 해석해 이를 현실에 적용하는 정치 집단입니다. 탈레반이 재집권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요. 탈레반 집권기를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 ‘파르바나: 아프가니스탄의 눈물’(2017)은 앞으로 아프가니스탄에 닥칠 일을 가늠할 수 있도록 해주는 영화입니다. 캐나다와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합작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으로 제90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장편애니메이션상 후보에 올랐던 수작입니다.

넷플릭스에서 ‘파르바나: 아프가니스탄의 눈물’ 바로 보기

 

 

①탈레반 집권 시절 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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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바나: 아프가니스탄의 눈물'. 넷플릭스 제공

시기는 명시되지 않지만 2001년으로 추정됩니다. 주인공 파르바나는 아버지와 함께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거리에서 물건을 팔고 있습니다. 글을 대신 읽어주거나 써주는 일도 합니다. 소녀인 파르바나는 거리에 함부로 나와서는 안 됩니다. 탈레반이 이슬람 율법에 따라 여성은 집에 있어야 된다고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여성에게는 물건을 사서도 안 되고, 여성이 물건을 팔아서도 안 됩니다.

하지만 어찌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 누눌라는 소련과의 전투에 나섰다가 한쪽 발을 잃었습니다. 누군가 부축해주지 않으면 거리에 나와 생업을 이어갈 수 없습니다. 파르바나에게는 남동생 라작이 있으나 너무 어리고, 언니 소라야와 어머니 파테나는 성인 여성이라 집 밖에 나올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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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바나: 아프가니스탄의 눈물'. 넷플릭스 제공

어느 날 탈레반 소속 젊은 병사 이드리스가 시비를 겁니다. 파르바나가 밖에 나와 물건을 팔면 안 되다면서 은근히 자신을 파르바나와 정혼시켜 달라고 합니다. 누눌라는 파르바나를 보호하려고 이드리스에게 면박을 주고, 이드리스는 앙심을 품게 됩니다. 이후 집을 갑자기 찾아 온 이드리스는 불온서적을 소유했다는 근거 없는 이유로 누눌라를 무단 체포해 데려갑니다.

 

 

②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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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바나: 아프가니스탄의 눈물'. 넷플릭스 제공

누눌라가 잡혀가자 가족은 당장 생계가 힘들어집니다. 밖에 나가 돈을 벌 수 있기는커녕 음식과 생필품조차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여자는 남편이나 아들 등이 동행하지 않으면 밖에 나와서는 안 된다는 이슬람 율법이 그들을 가로막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은 원래부터 그렇게 율법이 엄격히 적용된 사회였을까요. 많은 분들이 70년대 미니스커트를 입고 카불 시내를 거니는 여대생들 사진을 한번쯤 본적 있을 겁니다. 누눌라가 “아빠가 어렸을 적 이 도시는 평화로웠지”라고 표현하는 시기입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여자들도 대학에 다녔던” 시절은 1978년 쿠데타로 친소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끝을 맞이합니다. 정부는 이슬람 무장 반군 무자헤딘과 내전에 돌입했고, 자국 내 이슬람 공화국들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위기감에 소련이 1979년 침공하면서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비화됩니다(당시 처참했던 전황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작품 ‘아연 소년들’에 잘 묘사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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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바나: 아프가니스탄의 눈물'. 넷플릭스 제공

소련이 물러난 후 탈레반이 집권하며 독립을 쟁취했지만 누눌라는 “대가가 가혹하다”고 표현합니다. 이슬람의 이름으로 자유가 억압되고, 여성들의 인권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사회가 됐으니까요. 누눌라는 더 이상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고, 작가였던 파테나는 글을 쓸 수 없습니다.

누눌라가 잡혀간 후 파르바나가 그나마 밖에 나올 수 있으나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물을 우물에서 길러 올 수조차 없습니다. 파르바나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소녀에서 소년으로 변신합니다. 아버지 대신 거리에 나가 물건을 팔고 대독과 대필로 돈을 벌려고 합니다. 글을 전혀 읽지 못하는 어른들이 적지 않은데 어린 파르바나는 파슈토어와 다리어에 능통합니다. 용감한데다 영특하기까지 한 파르바나는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사회 활동을 할 수 없었던 거죠.

 

 

③미군의 진주, 새 희망 꿈꿨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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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바나: 아프가니스탄의 눈물'. 넷플릭스 제공

파르바나 덕에 가족은 생계를 이어갈 수 있게 됩니다. 이 영화의 영어제목 ‘Breadwinner’처럼 가장 노릇을 하게 됩니다.

파르바나는 활동이 자유로워지자 아버지를 감옥에서 빼내야겠다고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우연히 만난 옛 학교 친구 샤우지아와 함께 돈 벌 방법을 알아봅니다. 샤우지아는 파르바나보다 먼저 머리를 짧게 자르고 소년 행세를 하고 다녀 탈레반이 지배하는 사회 생리를 잘 알고 있습니다. 샤우지아는 돈을 많이 벌어 바다를 보는 게 꿈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은 내륙국가이니 해외에 나가 살고 싶다는 의미입니다. 샤우지아와 달리 파르바나는 아버지를 구해내기 위한 돈이 절실합니다. 둘은 각기 다른 목적을 위해 위험천만한 일에 나섭니다.

영화가 뒤로 갈수록 카불 상공에는 미군 정찰기들이 자주 오갑니다. 전쟁이 다가왔다는 신호입니다. 영화는 미군의 진주와 탈레반의 몰락이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다고 암시합니다.

영화에선 자세히 묘사되지 않지만 미국은 2001년 9ㆍ11 테러를 이유로 아프가니스탄과 전쟁을 벌입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 숨어 있는 테러 배후 오사마 빈 라덴을 내놓으라고 탈레반 정권에 통보합니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그해 10월 11일 전쟁에 돌입합니다. 아직까지 끝나지 않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시작입니다. 하지만 미국은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카불을 떠나게 됐습니다. 미국 역시 ‘제국들의 무덤’이라는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④20년 뒤 친구와의 약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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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바나: 아프가니스탄의 눈물'. 넷플릭스 제공

영화는 파르바나의 사연을 통해 아프가니스탄의 험난했던 역사를 압축해 보여줍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침범했고, 칭기스칸마저 손아귀에 넣고 싶었던 아프가니스탄의 과거를 돌아봅니다. 제국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아 실크로드 문명을 꽃피웠던 전성기도 되짚어봅니다. 아픈 역사 속에서 고통스럽게 살아온 사람들의 삶을 파르바나라는 개인을 통해 들여다 보는 거죠.

영화 막바지 파르바나와 누눌라가 나누는 대화는 특히 의미심장합니다.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정체성과 세계관, 오랜 꿈 등이 담겨 있습니다.

“우린 사람이 가장 큰 보물인 땅이다/ 우리는 전쟁이 끊이지 않는 제국들 사이에 있다/ 우린 힌두쿠시산맥 기슭 안 균열된 땅이다/ 북부 사막의 이글거리는 태양에 그슬린 땅/ 얼음 산봉우리와 대조되는 검은 돌무더기 토양/ 우리는 오리아나, 고귀한 이들의 땅/ 목소리가 아닌 말의 가치를 높여라/ 꽃을 피우는 것은 비다, 천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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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바나: 아프가니스탄의 눈물'. 넷플릭스 제공

파르바나는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샤우지아에게 갑작스레 이별을 고합니다. 샤우지아는 놀라면서도 20년 뒤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자고 제안합니다. 파르바나는 아마 서로 못 알아볼 정도로 변해 있을 거라면서도 약속합니다. 두 사람의 대화에는 20년 뒤면 세상이 바뀌어 자유롭게 서로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담겨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20년이 지난 후 다시 탈레반 시대를 맞이하게 됐으니 역사는 참 얄궂기만 합니다. 아프가니스탄은 더 어두운 시대로 곧 접어들겠지만 사람이 가장 큰 보물이고, 목소리(무력이나 율법)보다 말(문화나 개인의 능력)이 더 존중 받는 때가 빨리 오기를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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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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