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여름 영국 해리 왕자의 낯 뜨거운 사진이 세계 언론매체에 대문짝만 하게 실렸다. 당시 '플레이보이'로 소문난 27살의 해리 왕자가 미국 라스베이거스 호텔 객실에서 옷을 벗은 채 당구를 치고 젊은 여성을 장난스럽게 껴안는 '누드파티' 장면이었다. 해리 왕자 부친인 찰스 왕세자의 보좌관은 "소송하겠다"고 으름장을 놨지만 영국 왕실은 "지금은 코멘트할 때가 아니다"며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언론 보도에 섣불리 대응할 경우 역효과가 날 것을 우려한 조치이자, "절대 불평하거나 설명하지 말라(Never complain, Never explain)"라는 내부 지침에 따른 것이었다.
영국 왕실에 대한 언론의 추적은 17~18세기 근대 저널리즘 탄생 이후 지배체제 저항 차원에서 시작됐다. 피터 칼레로가 쓴 '개인주의 신화'에 따르면 영국 왕실은 당시 권력에 위협이 될 만한 정보에 대중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안간힘을 썼다. 영국 법원이 1680년 "국왕은 왕국에 불안을 초래하거나 직접 재가하지 않은 뉴스를 금할 수 있다"고 판결한 것도 이 같은 언론 통제의 일환이다.
영국 왕실을 둘러싼 취재경쟁이 치열한 것은 권력에 대한 견제 못지않게 세기의 결혼과 불륜, 이혼으로 점철된 왕실 스캔들만큼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소재가 없기 때문이다. 영국 왕실의 뒷얘기를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더 크라운'이 큰 인기를 끈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 때문에 특종을 노리고 협박·날조 등 불법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언론매체도 적지 않다.
이런 점에서 공정과 신뢰의 상징인 영국 BBC가 26년 전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인터뷰하기 위해 서류를 위조하고 거짓말한 사실이 들통이 난 것은 어찌 보면 새삼스럽지 않다. BBC는 2007년에도 '여왕 다큐멘터리 조작 사건'으로 시청자 비난이 빗발치자 사장이 나서 왕실과 시청자에게 사과하기도 했다. 공영방송의 생명은 공정성 중립성 객관성이다. 국민의 시청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 선정적인 상업방송처럼 시청률을 위해 협잡과 꼼수를 부리면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그것은 국내 공영방송도 마찬가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