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의 창] 오징어게임이 성공한 이유
10년 전까진 상상못했던 기적
우연 아닌 실력으로 세계 매혹
소비자 중심 디지털 전환과
긴세월 쌓아온 대한민국 팬덤
오징어 게임의 성공은 정말 놀랍다. 우리나라에서 제작한 드라마, 우리나라 어른들이 즐겨했던 게임을 소재로 만든 드라마, 우리나라 작가가 쓰고 우리나라 배우로 가득한 드라마가 전 세계 최고의 드라마로 선택받다니. 당연한 일이지만 오징어 게임이 세계 1위에 오르자 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다양한 분석이 쏟아져 나왔다. 한국 특유의 감수성이 세계인의 마음을 울렸다는 외신 기사도 있었고 한국의 뿌리 깊은 불평등과 기회의 상실에 대한 절망감을 활용해 전 세계 시청자를 사로잡았다는 평가도 있었다. 이외에도 숨 막히도록 긴장감이 넘치는 게임 방식,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익숙한 게임을 잔혹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파괴적 창조력, 마치 설치예술 작가의 작품을 보는 듯한 거대한 촬영세트, 생사가 걸린 상황에서 인간들의 심리를 세밀하게 그려낸 서사 등등 세계적 인기 요인에 대한 분석이 차고 넘친다. 모든 것이 다 타당한 이유지만 가장 공감 가는 분석이 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도대체 모르겠다'는 어느 전문가의 기고였다. 그렇다.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다.
우리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을 때 기적이라고 한다. 오징어 게임은 대한민국에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을 데이터로 보여준 것이다. 우리가 노래를 부르면 세계인이 따라 부르고, 드라마를 만들면 세계인이 함께 보고, 우리가 게임을 하면 세계인이 함께 따라한다. 10년 전만 해도 도저히 상상할 수 없던 일이 디지털 문명시대로 전환하면서 이제는 기적이 일상이 되는 시대를 맞게 되었다. 10년의 변화, 즉 디지털 문명전환에 기적의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시스템이 갖고 있던 권력이 소비자에게로 이동하면서 대한민국이 문명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
넷플릭스는 오직 데이터로만 결정하고 투자하는 기업이다. 그들의 투자 기준은 소비자의 팬덤이다. 수많은 나라 중에서도 우리나라 드라마에 투자를 늘린 데에는 웹툰의 역할이 컸다. 네이버와 카카오의 웹툰 플랫폼은 이미 세계 100개국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특히 아시아에서의 인기는 폭발적이다. 디지털 이전 시대에는 글로벌 시장 진출은커녕 일본 만화에 밀려 안방 지키기도 힘겨워하던 만화시장이 웹툰 플랫폼으로 전환하면서 거대 산업으로 성장 중이다.그 비결은 인기 작가 중심의 도제식 시스템을 파괴하고 소비자의 선택만을 기준으로 삼는 웹툰 플랫폼의 새로운 법칙 덕택이다. 누구든 웹툰을 그려 올리고 선택받은 자는 성공한다. 이렇게 되자 재능 있는 젊은 친구들이 어떤 권력에도 아부할 필요 없이 도전하고 자신만의 힘으로 큰 성공을 거둔다. 웹툰 작가의 성공은 시장 생태계 자체를 키우는 힘이 되었고 K웹툰의 팬덤은 아시아 전체로 확산됐다. 그걸 확인한 넷플릭스의 투자는 당연한 일이었고 이태원 클라쓰, DP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당연히 시장은 크게 성장했다. 작았던 만화시장은 디지털 문명으로 빠르게 전환해 드라마 시장과 융합하며 거대한 산업으로 발전 중이다. 여기서 우리 청년들의 일자리가 생기고 새로운 부의 창출이 가능해진다. 이것이 슬기롭게 뉴노멀 시대를 준비하는 전략이다.
오징어 게임의 기적을 만든 거대한 대한민국 팬덤을 만들기까지 참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다. K팝과 K드라마가 오래도록 길을 닦았고 웹툰 작가도, 유튜버도, 우리 국민의 수준 높은 문화도 큰 몫을 했다. 이들은 오직 하나 '인류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며 긴 세월을 갈고닦아 결국 세계인의 선택을 받았다. 디지털 신대륙에서는 꼼수도, 뇌물도, 치사한 권력의 남용도 성공의 수단이 될 수 없다. 오직 사람들의 마음을 사는 실력만이 성패를 가를 뿐이다.그 치열하고 공평한 경쟁에서 대한민국이 기적을 만들고 있다. 우연이 아니라 실력이다. 오징어 게임의 기적이 말하고 있다. 디지털 신대륙에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가 있다고.
[최재붕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