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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P'D.P'가 군필 남성의 자기연민을 위한 땔감이 되지 않으려면···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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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숲속의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신고 회원메모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movieli.st 작성일21.09.10 17:53 15,24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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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P'가 군필 남성의 자기연민을 위한 땔감이 되지 않으려면···

칼럼니스트 위근우



폭력, 이 끈질긴 대물림… ‘방관’은 더 비겁하게 그려져야 한다

탈영병을 잡는 군인인 군무 이탈 체포조 D.P.(Deserter Pursuit)와 각각의 탈영병 사연을 중심으로 군 폭력과 부조리를 그려낸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D.P.>. 공개 이틀 만에 넷플릭스 ‘오늘 한국의 톱 콘텐츠’ 1위에 올랐다. <D.P.> 예고편 캡처

탈영병을 잡는 군인인 군무 이탈 체포조 D.P.(Deserter Pursuit)와 각각의 탈영병 사연을 중심으로 군 폭력과 부조리를 그려낸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D.P.>. 공개 이틀 만에 넷플릭스 ‘오늘 한국의 톱 콘텐츠’ 1위에 올랐다. <D.P.> 예고편 캡처

한국에서 군 폭력에 대한 예술적 재현은 그것이 상당히 탁월한 성취를 보일 때조차 양가적 효과를 발휘한다. 때때로 이들 작품은 군대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구조적 필연성을 고발하고 우리의 비판적 의식과 책임감을 환기시키지만, 그보다 많은 경우 군대를 다녀온 다수 한국 남성들의 자기연민을 불태우기 위한 땔감으로 사용된다. 후자의 경우 작품에 이미 그런 관점이 내재되어 있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호시탐탐 자신이 군대에서 겪은 고난과 억울함을 호소할 준비가 된 남성들을 제어하기란 어렵다.

지난 8월28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D.P.>에 대한 반응 역시 마찬가지다. 드라마 각본에도 참여한 김보통 작가의 웹툰 <D.P. 개의 날>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탈영병을 잡는 군인인 군무 이탈 체포조 D.P.(Deserter Pursuit) 안준호(정해인), 한호열(구교환)과 각각의 탈영병 사연을 중심으로 군 폭력과 부조리를 그려낸다. 이미 많은 이들이 평가했듯, 수작이다. 구조적 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은 올바르고, 캐릭터들은 매력적이며, 만듦새는 깔끔하다. 그러니 이 작품을 <82년생 김지영> 남성 버전으로 부르며, 한국 남성들의 고난을 몰라주는 것에 대한 억울함의 근거로 인용하는 이들에 대해 작품의 책임은 별로 없다. 혹시 모를 오해를 피해 마지막 에피소드 제목을 ‘방관자들’이라고까지 친절히 명기하지 않았나. 다만 이렇게는 말할 수 있겠다. <D.P.>에 대한 열광적 오독에 작품의 책임은 없지만, 반사적으로 자기연민에 빠질 준비가 된 상당수 군필자가 원하는 수준까지만 열광하고 중요 문제의식을 피해 빠져나갈 수 있던 서사적 빈 공간에 대해선 비판적으로 되짚어볼 필요가 있노라고. 이것은 <D.P.>의 잘못이나 한계에 대한 지적이라기보다는, <D.P.>가 미처 말하지 않았던 것을 함께 이야기해야만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한 바가 더 온전해진다는 것을 뜻한다.

지난 8월28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D.P.>. <D.P.> 예고편 캡처

지난 8월28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D.P.>. <D.P.> 예고편 캡처

기본적으로 잘 만든 군 재현 작품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되는 인물 재현을 통해 피해에 대한 자기연민으로부터 가해에 대한 죄책감을 자연스럽게 도출하도록 한다. 윤종빈 감독의 영화 <용서 받지 못한 자>가 그러했고, <D.P.>도 비슷한 길을 따른다.

문제는 가시적이고 잔혹한 가혹행위가 가상적으로나마 군 내 폭력의 대표성을 갖게 될수록 그 정도까진 가지 않은 다수의 ‘피해-가해자’가 오직 피해자로서의 자리만을 취사선택하기 쉬워진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D.P.>는 군대라는 특수한 공간과 조직 안에서 어떻게 극악한 행위가 벌어질 수 있는지 잘 보여주지만, 그러한 악마성과는 매우 거리가 멀면서도 다분히 폭력적인 ‘중범위(middle range)’를 보여주진 못한다. 이 중범위가 중요한 건, 안준호만큼 정의롭지 못하고 작품 속 악의 축인 황장수(신승호) 패거리만큼 악랄하지도 못한 절대 다수의 시시한 이기주의자들이 폭력의 악순환을 만들어가는 가장 넓은 범위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경험을 인용하자면, 갓 들어온 신병에게 “어디에서 왔어?”라고 질문하는 고참에게 “서울에서 왔습니다”라고 답하면 “서울이 다 너네 집이야?”라는 말이 돌아온다. 여기에 대단한 가해는 없다. 하지만 그 뒤에 다시 “어디에서 왔어?”라는 질문이 들어오면 정말 바보 같은 대답이란 생각이 들면서도 집 주소까지 빠르게 읊어대는 자신을 확인해야 한다. 엄청난 악마성과 물리력 없이 한 줌의 권력과 장난기만으로도 한 성인의 주체성과 자존감을 순식간에 구겨버릴 수 있다. 그것이 군 폭력의 본질이고 그런 환경에서 황장수나 류이강(홍경) 같은 존재 역시 등장할 수 있다.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인 이중성
왜 보고만 있었냐는 질문 앞에
누구도 자유로울 수는 없다

절대다수 시시한 이기주의자들이
악순환을 만드는 가장 넓은 범위
오직 피해자로 ‘알리바이’ 제시
뜨거운 이 작품의 ‘다음편’은
미처 말하지 못한 것을 말해주길

요즘 군대는 안 그렇다는 해명은
가장 먼저 기각되어야 한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최근 국방부가 직접 나서 해명한 것처럼 요즘 군대는 그렇지 않다는(혹은 작품 배경인 2014년에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는) 식의 작품에 대한 반박은 가장 먼저 기각되어야 한다. 복무 기간이 줄어들고 각 병사에게 휴대전화가 지급된 지금이 과거보단 평균적으로 더 나아졌을 것이다. 다만 그건 작품을 이해하는 데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그들의 말대로 작품 속 가혹행위가 일부 극단적 사례라 하더라도 그런 극단적 사례가 나오고 또 은폐될 수 있는 폐쇄된 계급사회로서의 군대라는 공간의 본질이 바뀌는 건 아니다. 이러한 반박은 앞서 지적한 군필 남성들의 지독한 자기연민과 함께 <D.P.> 같은 작품에 대해 불필요하고 소란스러운 논란만을 발생시킬 뿐이다.

최근 국방부가 직접 해명에 나설 정도로 <D.P.> 속에서 그려진 군대 내의 폭력 문제는 한국 사회의 뜨거운 이슈가 됐다. <D.P.> 예고편 캡처

최근 국방부가 직접 해명에 나설 정도로 <D.P.> 속에서 그려진 군대 내의 폭력 문제는 한국 사회의 뜨거운 이슈가 됐다. <D.P.> 예고편 캡처

일부 사례만으로 개선된 병영 문화를 폄하하지 말라는 주장과 군대는 언제나 조ㅈ같았고 우리 남성들은 징병제의 억울한 피해자일 뿐이라는 주장은 서로 배척하는 듯하지만, 실은 상보적으로 폭력의 본질을 회피하는 말들이다. 전자가 구조적 폭력을 외면한다면, 후자는 그 구조 안에서 가해를 재생산하는 본인들의 책임을 모른 척한다. 폭력의 원죄는 황장수처럼 대놓고 나쁜 놈들에게만 돌아간다. 다시 말하지만 여기에 <D.P.>의 책임을 묻긴 어렵다. 다만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사라지는 군대와 군필자들의 상보적인 협잡 속에서 중범위를 그려내지 못한 <D.P.>의 폭력 재현은 의도적인 오독에 취약해진다. 물론 마지막 에피소드 ‘방관자들’에서 작품은 황장수 패거리의 피해자이자 탈영병인 조석봉(조현철)의 고통에 안준호와 한호열, 나름 괜찮은 간부로 그려지는 박범구(김성균)의 방관이 개입했음을 암시한다. 작품의 거의 마지막 즈음 가혹행위 때문에 자살한 군인의 누나가 준호에게 왜 보고만 있었느냐고 힐책하는 장면은 굉장히 직접적이다. 맞다. 이 폭력의 대물림에서 안준호도 한호열도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또한 반문할 수밖에 없다. 현실의 폭력을 지탱하던 시시한 방관자들이 언제 안준호만큼 반성하고 자기 신념을 지키며 현실 개선의 의지를 불태웠는가. 언제 안준호처럼 인간에 대한 예의를 위해 고참을 두들겨 팰 정도의 기개를 보였단 말인가. 중범위가 표현되지 않아 작품 속 수많은 직접적 가해자 대신 안준호가 방관자의 자리를 대표할 때, 현실의 방관자들은 그에게 이입해 방관의 원죄를 마음에 품고 괴로워하는 양심적 인물로서의 자아상을 상상하며 자위하기 십상이다.

이러한 기만적 왜곡에서 <D.P.> 속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인 한호열의 존재는 군필자들에게 또 다른 대체역사를 선사해줄 뿐이다. 그는 안준호를 중심으로 한 세계에서 이상적인 선임으로 그려지지만, 군필자 시청자들에겐 자신이 한 번도 그랬던 적 없는 능력 있고 탈권위적인 고참이란 이상적 자아상을 선사한다. <D.P.>에 대해 작품 내적인 책임을 물을 단 하나가 있다면 한호열을 너무 이상적인 인물로 구성했다는 것이다. 최소한 방관의 문제에서 그는 좀 더 비겁하게 그려졌어야 했다. 그에 이입하는 군필자들의 기만 때문만은 아니다. 군대라는 공간이 끔찍한 건, 낮은 확률로 황장수 같은 인간을 만날 수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안준호 정도의 인간도 한호열 정도의 선임으로 성장할 확률이 거의 불가능에 소급하기 때문이다. 조금씩 자신을 잃고 폐쇄적 계급사회의 규칙을 내면화하는 과정을 통해 군대의 폭력은 재생산된다. 피해자이자 가해자로서의 이중성 역시 이러한 재생산 안에서 만들어진다.

칼럼니스트 위근우

칼럼니스트 위근우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D.P.>에서 누락된 것들에 대한 논의가 꼭 필요한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군대 문제에 대해 별로 관심 없거나 군대 배경의 작품은 빤하다고 생각하는 이들마저 6개 에피소드를 순식간에 정주행하고 간만에 군 폭력 문제가 뜨거운 이슈가 될 정도로 <D.P.>는 흡입력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 흡입력의 5할 이상을 차지하는 한호열의 매력을 비롯해 안준호와 한호열의 버디적인 관계나 3화에서 준호와 정현민(이준영)의 액션 신처럼 어느 정도 오락적인 요소가 더해질 수밖에 없다. 드라마틱한 구성을 취할수록 흔한 이기주의자들이 만들어가는 폭력의 덜 가시적이지만 더 끈질긴 대물림은 누락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D.P.>가 지금의 형태가 아니었다면 이 정도로 군대의 폭력적 구조에 대해 이야기 나눌 뜨거운 분위기가 만들어지지도 못했을 것이다. <D.P.>가 성공적 작품이 되기 위해 필연적으로 다루지 못한 것들을 통해 비로소 그것들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할 기회가 만들어진 셈이다. 이 역설 속에서 <D.P.>의 서사적 빈 공간에 대한 비판적 논의가 작품에 대한 가장 우호적인 보론이 되길 기대한다.

 

제2의 <D.P.>가 더는 한국 남성들의 자기연민을 위한 알리바이가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원문보기: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109101622005#csidx85c6b17810e83d2844e0e6ea4b64266 onebyone.gif?action_id=85c6b17810e83d2844e0e6ea4b64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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