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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영화제럴드의 게임 (Gerald's Game. 2017) - 트라우마를 마주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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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포인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회원메모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7-11 21:24 1,71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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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를 마주할 때

평화로운 어느 날, 한 부부가 소원해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외딴 별장을 찾는다. 그리고 제시(칼라 구기노)에게 수갑을 채워 침대에 묶고 SM 플레이를 하려던 남편은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키며 사망한다. 그 순간, 관객은 〈쏘우〉 시리즈와 같은 숨 막히는 심리 스릴러 장르를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제럴드의 게임〉은 보기 좋게 이를 배신한다. 영화는 제시의 외부를 관찰하는 대신, 환상과 실재의 조합을 통해 내면으로 더욱 깊이 파고 들어간다. 물론 그 환상(을 가장한 기억)들은 상황에 대한 적절한 조언을 하며 그녀의 탈출을 돕지만, 영화에서 중요한 건 제시의 탈출만이 아니다. 우리는 개기일식 아래 벌어졌던 그녀의 트라우마에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 영화는 집요한 방식으로 제시의 트라우마를 대면하게 만든다. 심지어 그녀를 탓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까지 카메라는 위기의 순간마다 그녀가 도피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버린다. 수갑이 채워져 꼼짝할 수 없는 것처럼, 그녀는 죽음의 경계에서 트라우마를 바라보아야만 한다. 그 순간 영화는 단순한 심리 스릴러가 아닌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성장담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낸다. 

이 영화를 추천하기에 앞서 망설인 지점이 있다. 거의 고어물 수준인 물리적 폭력의 수위도 그렇지만, 가스 라이팅 같은 심리적 폭력을 보여주는 교과서라고 생각될 만큼 남성이 자신보다 약한 여성에게 폭력을 저지르는 방법을 잘 묘사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아픔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과거를 생생히 떠올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건, 〈제럴드의 게임〉은 결코 포르노적 욕망에 복무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는 감춰야 할 것을 감추는 적절한 타이밍을 확실히 안다. 또 한 가지. 감독은 트라우마를 반드시 대면해야 한다는 어떤 사명감에 차 있다. 설령 대면이 트리거가 되어 상처를 다시 쓰라리게 하더라도 트라우마를 반드시 바라보아야 한다는 믿음이 있는 듯하다. 그 말은 너무나 당연해서, 어떤 면에서는 오만하게까지 보인다. 

그럼에도 내가 이 영화를 추천하기로 마음먹은 건 제시의 세계를 구성하는 게 바로 그 트라우마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영화 전체가 오로지 제시의 트라우마로 이루어져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아주 짧은 순간의 단면이 나머지 인생 전체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 누군가는 믿기 힘들 이 이야기를, 감독은 집요하게 설득한다. 우리는 타인의 감정에 완벽히 공감할 수 없다. 영화에 나오는 타인, 즉 상상된 타자의 트라우마에 대해서라면 더더욱 그렇다. 당연한 일이다. 비슷한 경험이 있지 않은 한, 우리는 결코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제럴드의 게임〉은 영리하게도 죽음의 공포를 계기 삼아 제시의 자아를 여러 갈래로 분리시킨다. 트라우마는 타인이 되어 그녀에게 말을 건다. 분리된 자아들은 서로 핑퐁을 하며 거대한 트라우마의 전체를 드러낸다. 영화의 무시무시한 지점은 그녀가 겪은 일과 관련 없는 외부적인 사건도 아무렇지 않게 엮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니 제시는 끔찍한 기억에 시달리면서도 거기에 매몰되지 않는다. 곧바로 생존을 위해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극복은 행동을 수반한다'라는 명제를, 감독은 집요하게 실천하려 한다. 그 완고한 믿음에 나 역시 한 표를 던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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